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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국(대구가톨릭대 창업경영학과 교수 / 논설위원 / Saxophonist / 교육부ㆍ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상) |
100세 시대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니다. 의학과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죽음이 언젠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노화를 늦추는 약, 장기 재생 치료, 디지털 뇌 복제 기술 등은 인간이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기대를 부추긴다. 그러나 장수 시대가 곧 "죽음의 소멸"을 의미하는가 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수명이 늘어나는 것과 죽음이 사라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인류는 질병을 하나씩 극복해 왔다. 백신, 항생제, 암 조기 검진은 우리의 평균수명을 크게 끌어올렸다. 하지만 질병을 물리친다고 죽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 질병을 넘어도 다른 위험이 기다리고 있고, 노화 자체는 여전히 남아 있다.
과학기술이 아무리 진보해도 생명은 결국 시간의 한계 안에서 움직인다. 죽음은 늦출 수는 있어도 지울 수는 없다.
죽음 소멸론에는 한 가지 착각이 있다. 인간을 기계처럼 본다는 점이다. 고장 나면 부품을 갈아 끼우면 된다는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인간은 단순한 신체의 조합이 아니다. 기억ㆍ감정ㆍ관계ㆍ삶의 궤적이 한 사람을 만든다. 장기를 인공물로 대체할 수 있다 해도, 존재 전체를 교체할 수는 없다. 생명은 생물학을 넘어 정신과 서사로 확장된다. 생명을 기계적으로 다루려는 발상은 인간 존재의 깊이를 간과한 것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장수의 `질`이다. 평균수명은 늘었지만, 건강수명은 그것만큼 늘지 않았다. 80세를 넘겨도 스스로 걷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치매와 만성질환, 돌봄 공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죽음을 없애겠다는 화려한 기술이론보다 시급한 것은 지금 눈앞의 돌봄 체계와 노후의 삶을 어떻게 정비할 것인가다. 장수 사회에서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의 장기 생존`이다.
죽음을 없앨 수 있다는 환상은 우리를 중요한 질문에서 멀어지게 한다. 삶의 끝을 부정할수록 삶의 질은 오히려 흔들린다. 끝이 있다는 자각이 하루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오늘의 선택이 더 진지해지는 이유도, 관계를 돌보려는 마음이 생기는 이유도 유한성의 감각 덕분이다. 인간은 죽음을 의식하며 살아갈 때 비로소 시간을 관리하고, 삶의 방향을 정한다.
장수 시대의 핵심은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가 아니다.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어떤 품위로 떠날 것인가"가 더 중요한 축이 된다. 스스로의 삶을 정리하고, 연명보다 품위를 선택할 수 있는 문화와 제도가 필요하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태도가 장수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다.
죽음은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변해야 한다. 장수 시대는 `죽음을 밀어내는 시대`가 아니라, `죽음을 더 깊이 이해하는 시대`다. 기술은 시간을 늘릴 수 있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채울지는 인간의 문제다. 죽음을 외면하는 사회가 아니라, 죽음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삶을 만드는 사회가 장수 시대의 길이다.
http://www.changwonilbo.com/news/327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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