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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2/04/13  창원일보
도도새<65> 3부 - 진실과 선
한 민

간밤에 수비대장의 반가운 소식과는 달리 장국진의 꿈자리가 사나웠다. 그는 꿈속에서 호랑이의 꼬리를 밟고 쫓기는 꿈을 꾸었는데 호랑이가 꿈에 나타났다는 것만으로 위안으로 삼았다.


여흥이 무르익을 무렵 웨이터가 장국진에게 다가가서 귓속말을 했다.


장국진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웨이터는 테이블 위에 소형카세트를 올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장국진이 턱으로 카세트를 틀어보라고 지시했다.


카세트 테이프가 돌아가자 자리에 앉아있던 자들이 갑자기 자리를 고쳐 잡고 입을 멍하니 벌리고 사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첫 부분은 분명 지난 번 회의 때의 내용이었다.


뒤이어 흘러나온 목소리는 분명 갈홍하의 목소리였다.

 

 


"본 좌는 당신들을 모두 용서할 것이오. 단, 이 모임에 대하여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오. 이에 동의하는 자는 삼일 안에 본 좌를 방문하여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하여야 할 것이오."   

 

 


삼일 안에 용서를 구하면 살려 준다는 최후통첩이었다. 가도 삶이 보장이 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가지 않으면 반드시 죽는다. 그렇다면 가서 용서를 구하는 쪽이 목숨을 영위할 공산이 크다. 사내들은 사색이 되어 있는 장국진의 눈치를 살피며 하나 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넓은 회의실에는 장국진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혼자 회전의자에 앉아 있었고 테이블을 빙 둘러싼 찻잔에는 여전히 김이 모락거렸다.

 

 


같은 시각 갈홍하의 대저택 만찬장.


갈홍하의 주선으로 현찬과 민채 일행은 아쉬운 이별주를 나누고 있었다.


중국은 지역이 넓어서 지방마다 술 마시는 문화가 조금씩 차이가 있었는데 갈홍하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은 교대로 술잔을 채우고 건배 제의를 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었다. 술은 마시고 싶은 양을 마시되 마시지 않더라도 반드시 입에는 대어야 한다고 했다.


민채는 온몸에 긴장이 풀리면서 하루 속히 귀국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뜬금없이 중국까지 날아온 그였다. 자신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이러한 일을 진행시킨 현중이 야속했지만 그의 안위가 걱정이 되어 한 달음에 달려온 낯선 땅에서 자신을 납치한 자와 마주앉아 협상을 벌이고 이렇게 아무 걱정 없는 사람처럼 술판을 벌이자 내심 허무함을 느꼈다.


민채의 이런 생각을 천일이 눈치 챘는지 천일의 차례가 되자 술잔을 다 채우고는 잔을 들어 한 마디 했다.

 

 


"오늘 같이 훌륭한 식사를 대접해 주신 갈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중국의 대륙적인 기풍을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 새벽에 다녀온 장백산에서 놀란 것은 매점에서 판매되는 맥심 커피와 삼양 컵라면 그리고 온천수에서 삶은 계란과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백향목 등이 아닙니다.  뛰어난 온천수와 조악한 온천탕입니다.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장백산의 매력을 끄집어내면 양국 간 우호증진이라는 명분과 갈회장님과 이회장님의 실속을 모두 취할 수 있 발전적인 관계가 되시기를 바라면서 건배제의를 하겠습니다. 위하여!"

 

 


술잔에 다시 술을 채운 갈홍하가 진지하게 말했다.

 

 


"중국인은 배신을 싫어합니다."   

 

 


갈홍하가 신호를 보내자 겁을 집어먹은 수비대장이 연회장으로 들어왔다. 갈홍하가 고개를 살짝 들자 그와 눈이 마주친 사내 둘이 수비대장의 팔을 양족에서 끼고 험악한 기세로 끌고 나갔다.


갈홍하가 말했다.

 

 


"그리고 중국인은 신용을 중히 여기지요. 믿음을 위하여!"   

 

 


이구동성으로 커다란 복창을 신호로 총성이 울렸다.


순간적으로 정적이 감돌았다.

 
정적을 깨고 갈홍하가 말했다.

 

 


"이회장님 덕분에 내부의 배신자를 색출하게 되었습니다. 장국진을 포함한 그들의 계보는 지금쯤 역정보를 흘려 모두 소집에 응했을 것이오. 지금쯤 이회장께서 주신 테이프가 공개되고 있을 것이오. 모든 게 이회장 덕분이오. 나는 앞으로 한국 내의 모든 사업권을 이회장을 통해서 참여하겠소. 이회장께서도 중국 내에 투자할 계획이 있으시면 나를 통하시오. 서로가 큰 힘이 될 것이오." 

 

 

  
현중이 말했다.

 

 


"제가 바라던 바입니다. 비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더니, 우리가 그런 경우인 것 같소. 환영하는 바입니다."   

 

 


갈홍하의 부하가 황급하게 뛰어 들어와서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는 조소 띤 얼굴로 현중에게 말했다.

 

 


"장국진이 리샤오 반점 꼭대기에 뛰어내렸다는군요. 그런 배짱으로, 쯧쯧!"

 

 


중국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갈홍하의 대저택 만찬장에서 한창 이야기가 무르익어 가는 가운데 이제 막 도착한 갈홍하의 아내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들어섰다.


눈에 띄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갈홍하가 그녀를 소개했다.

 

 


"베이징대학에서 한국어 강의가 개설되었을 때 저의 선생님이셨던 분입니다. 제가 끈질기게 구애한 끝에 아내가 된 사람입니다."   

 

 


모든 시선이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민채의 술잔은 무관심을 반영하듯 계속해서 비워지고 있었다. 천일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민채를 응시하고 있었다.


갈홍하의 아내가 인사를 했다.

 

 


"여러분 대단히 반갑습니다. 우연한 만남이지만 하나님의 배려라고 믿습니다. 오랫동안 사귄 친구와 같은 정이 느껴집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저의 부군과 한국의 이회장님과 도우시는 모든 분들이 앞으로 소중한 인연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찰나의 정적이 깨지고 환호성과 함께 큰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간 민채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는 취중이어서 환청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가 박수 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 비스듬히 돌리면서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다름 아닌 보라색 향기, 지현이었다.


민채가 소리쳤다.

 

 


"누나!"   

 

 


그의 외마디 비명은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갈홍하의 아내, 지현은 한 동안 벌린 입을 닫지 못했다.


모두가 민채와 지현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지현이 민채의 곁으로 다가와서 그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민채야, 네가 어떻게?"   

 

 


갈홍하 역시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두 분 아는 사이셨나?"  


"누나, 파라구아이 간다고 했었잖아."

 

 


지현의 얼굴이 빨개졌다. 갈홍하는 호기심어린 눈빛을 보내며 민채에게 술을 권했다. 민채는 단숨에 마셨다. 현중이 걱정스런 얼굴을 하고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민채는 마시면 마실수록 점점 머리가 맑아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만찬은 늦은 밤까지 계속되었다. 무덤덤한 표정의 지현은 갈홍하의 옆에서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민채는 끊임없이 잔을 비웠다. 영문을 알 길 없는 현중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민채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왕진향은 현중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면서 그에게 깊은 관심을 보였다. 현중 역시 호감을 느껴서인지 아니면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서인지 평소보다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날이 밝자 민채는 심한 두통을 무릅쓰고 서둘러 귀국 채비를 하였다.


현중은 갈홍하와 사업 얘기를 뒤로 미루고 민채와 동행키로 했다. 왕진향은 현중과의 이별이 못내 아쉬운 듯 다음 만날 날을 기약했다.


갈홍하의 아내, 이지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데일리 차이나지에는 경제면 하단 부에 현중과 갈홍하의 악수 장면과 함께 한국의 현민엔터테인먼트 주식회사가 중국에 현지 법인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는 기사가 간략하게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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