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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1/07/20  창원일보
[이상호 칼럼]
우크라이나 여군

`전략과 전술` 저자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큰 나라로 이 나라의 고대 원주민인 슬라브(역사적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두 나라는 하나의 공동체)족들은 당시 흑해로 연결되는 드네프르 강(키예프 지역) 어귀에서 수렵과 농경으로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기원전 8세기에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인 스키타이족들이 침입해 슬라브족을 몰아내고 유목과 농업으로 생활하면서 이웃 흑해 연안에서 생활하던 그리스인들과 교역을 하며 도시국가를 이루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들도 3세기에 북쪽에서 내려온 게르만족의 일파인 고트족에 침입 당하고 고트족 역시 4세기에 동쪽에서 건너온 훈족에게 쫓겨나고 훈족 역시 전염병 때문에 짧은 전성기를 뒤로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공백지가 된 키예프 지역은 북쪽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바이킹족(서유럽과 이탈리아 해안을 휩쓸던 북유럽의 노르만족)들이 비잔틴 제국으로 통하는 육상 교역로를 개척하기 위해 이동하다가 키예프(현재 우크라이나 수도)에 정착해 생활하면서 류리크의 측근인 올레크가 이 지역에 키예프 공국을 세우고 이 일대를 다스리고 뒤이어 980년 키예프 대공으로 즉위한 블라디미르1세는 강력한 국가체제를 갖추고 남 러시아의 스텝 지대를 통과하는 초원길을 거쳐 많은 아시아계 유목민족과 교류하고 비잔틴 제국(동로마 제국)과도 활발하게 교역하면서 비잔틴 제국의 황녀와 결혼을 해 크리스트교(동방정교)를 국교로 받아들여 주변국들과 유대를 더욱 강화하면서 정치적으로 안정화 시키고 문화적으로도 비잔틴을 통해서 많은 발전을 이루고 뒤이어 11세기에 블라디미르 1세의 아들인 야로슬라프(1015~1054)시대에 유럽 왕국들과 혼인관계를 맺으며 정치적 유대를 강화하고 국가통치의 기틀이 되는 법전을 편찬하는 등 키예프 공국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1054년 키예프 대공국은 대공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내부 분란이 일어나 여러 개의 공국으로 분열돼 쇠퇴해진다. 그러자 이를 틈탄 몽골군이 1238년 러시아 지역의 공국들과 쇠퇴해 가던 키예프 공국을 멸망시키고 1243년 이 지역에 킵차크 칸국을 세우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수백 년간 식민 지배를 한다.
 

이후 몽골의 지배가 끝난 뒤로도 키예프 대공국(우크라이나)은 이렇다 할 활약의 빛을 보지 못하고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합국, 오스만 제국, 러시아 제국 등에 식민통치를 받고 2차 세계대전 때에는 나치 독일이 그리고 독립 전까지 소련제국의 변방 나라로 지내오다 1991년 소비에트 연합체제(고르바초프)가 와해돼 모스크바가 무너지자 15개의 국가들이 소비에트 연합으로부터 독립을 하는데 우크라이나도 1991년 8월 24일 독립을 한다.
 

독립을 한 우크라이나는 드네프르 강을 경계로 러시아어를 쓰며 러시아 정책을 따르는 동쪽과 우크라이나어를 쓰며 서유럽과 친밀함을 보이는 서쪽과 대립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1991년 초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결과는 서쪽(반 러시아파)파인 레오니드 크라우추크가 당선돼 정권을 잡는다. 하지만 그는 경제위기를 막지 못해 지지율이 떨어져 1994년 친 러시아파인 레오니드 쿠치마에게 패해 레오니드 쿠치마가 정권을 잡고 그는 친 러시아 정책을 유지하다 임기 말에 그의 후계자이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폭 지지를 받는 야누코비치를 여당 후보로 내세운다. 반면에 야당은 레오니드 쿠치마 시절 국무총리를 지내면서 쿠치마의 친 러시아 정책과 달리 친서방적인 정책을 펼친 빅토르 유센코가 반 러시아 단일 후보로 선출돼 두 후보가 2004년 대선을 치르는데 박빙의 승부로 여당이 재집권에 성공했다고 우크라이나 선관위가 발표를 한다.
 

그러나 이내 부정선거를 치렀다는 증거가 포착되면서 우크라이나 반 러시아파 시민들과 야당 시위대는 독립광장(마이단)과 국가 주요기관을 점령해 오렌지색 옷을 입거나 오렌지색 깃발을 휘두르며 시위를 벌이자(오렌지 혁명)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재선거를 선언하고 재선거 결과 빅토르 유센코가 승리해 대통령에 오른다.
 

이후 여러 대통령을 거쳐 현재 국민의 종 당 코미디언 출신인 블로디미르 젤렌스키(1978년생)가 6대 대통령으로 올라 침체된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그런데 이런 나라가 최근에 독립 30주년 기념 열병식을 준비하면서 여군들에게 군화대신 하이힐을 신고 행진하게 해 논란이 일고 있는데 이러한 지시는 페트로 포로센코 전 대통령과 가까운 의원 몇 명이 신발 한 켤레를 들고 국회에 나타나 퍼레이드에 참가하는 여군한데 하이힐을 착용시키라고 국방부에 권유해 국방부가 이 제안을 받아들여 여군 복장으로 규정했다. 그러자 야당에서는 여군의 하이힐 착용이 성차별주의이자 여성혐오에 해당 한다며 국방부를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고 온라인 네트워크에서도 비난 여론이 쇄도하고 있어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난처한 입장이 돼버렸다.
 

이러한 난처한 입장은 비단 우크라이나에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에 우리나라 국방부도 공군, 육군 가리지 않고 여군 성추행 사건으로 국민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고 있어 우크라이나나 별반 다를 게 없어 우리군도 정신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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