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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9/04/24  창원일보
[안태봉 칼럼]
땅에 쓰러지면 땅을 짚고 선다

시인 / 부산사투리보존협회장
일찍이 고려시대 지눌 보조국사께서 쓰신 `보조어록`이란 책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땅에 쓰러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선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 사람이 길을 가다 그냥 쓰러지면 무엇을 의지해야 되는가?라는 물음에 가장 쉬운 말이 바로 땅을 의지해 일어서야 한다. 지팡이나 옆에 동료라든가 아니면 동행하는 사람이 있으면 일어날 수 있다.
 

사람이 길가에 쓰러지면 허공을 잡고 일어설 수는 도저히 없다. 다시 말해서 어느 의지처를 삼고 일어서야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당신이 무슨 일을 당했을 때 해야 할 일은 무엇을 하나쯤 지정해두고 일을 도모해야 됨은 물론이다.
 

시호명명(視乎冥冥)    
청호무성(聽乎無聲)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을 보고    
소리 없이 소리를 들어라
 

정말 멋진 문장이다.
 

이는 바른 마음으로 이야기를 하고 또 그 마음을 읽어야 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남의 이야기를 잘 듣고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아야 된다.
 

우리는 시를 잘 쓰는 사람을 두고 시성(詩聖)이라 하고, 바둑의 경지에 오른 사람을 보면 기성(棋聖)이라 부른다. 여기서 성인 성(聖) 자를 파자하면, 귀 이(耳)와 입 구(口)와 임금 왕(王) 자의 합성어 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렇다. 성인이 되려면 잘 들어야 하고, 말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하고, 그 후에 입을 열어 말을 해야 된다.
 

다시 말해 듣고 말하는 그야말로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우리는 성인(聖人)이라 하지 않았던가.
 

성인은 어디에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 여러분께서 성인이 될 수 있다.
 

바로 보고, 바로 듣고, 바로 말하는 성품을 길러야 함에 있음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나이가 들면 "지갑은 열고 말을 줄여서 해라"는 격언이 있다.
 

그냥 맞는 말이다. 연세가 깊으면 깊을수록 경험이 있다 해서 후진들이 하는 모습이 꼴불견스럽고 성에 차지 않기 때문에 군소리 잡소리가 자연적으로 많아지게 돼 있다.
 

그래서 하는 말이 지갑은 열고 말은 줄여서 해라고 강조한다.
 

"들을 때는 들리는 것만 있게 하고, 볼 때는 보이는 것만 있게 하고, 생각할 때는 생각만 있게 하라"는 성인의 말씀이 크게 회자돼 온다.
 

땅에 엎어지면 혼자 일어나든지 아니면 무엇을 의지하며 일어나는 것이 인지상정일진대 매사에 하는 일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투덜거리고 투정을 하면 될 일도 안 됨을 알아야 한다.
 

1000년 전의 어록이지만 삶의 종착지는 어디인가. 그건 나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많이 먹으면 체하게 되고, 아무리 좋은 음악이나 영화도 자주 보면 신통치 않다. 그래서 지눌선사가 땅에 쓰러지면 땅을 짚고 일어서라고 교훈적 말씀을 하신 것 같다.
 

진리의 당체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목전에 있는 것임을 알아야 된다.
 

성인의 자세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지 타인이 만드는 것은 아니다. 지눌국사의 말씀이 1000년 지난 오늘까지 우리의 빈 가슴을 메아리쳐 오는 것은 비단 나뿐만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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