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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9/12/01  창원일보
[우외호 칼럼]
거장의 문학세계 `황무지`

논설위원
`T.S 엘리엇`의 장시 `황무지`는 20세기 정신문화사에서도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품으로 이렇게 시작된다.


`4월은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기억과 욕망을 뒤섞고/봄비로 잠든 뿌리를 일깨운다/차라리 겨울에 우리는 따뜻했다/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고/마른 구근(球根)으로 작은 생명만 유지했으니`라고….


이 책은 미국문학사의 과정 속에서 일대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준다. 뿐만 아니라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모 나라, 그리고 세계와 모든 문학인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제공한다. 휘트먼의 시 `풀잎`, `내 자신의 노래`가 미국 민주주의 정신과 자연에의 사상을 건강하고 폭넓게 담아 영향을 끼쳤다면 에리엇은 20세기 대표적인 문예사조인 모더니즘을 자신의 시 작품과 해박한 이론으로 여실히 밑바탕을 다져 놓은 시인이다.


1922년에 발표된 이 장시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 전역을 강타한 죽음과 절망의 황폐함, 그리고 저 세계문화의 붕괴를 새로운 시의 형식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곳곳에 널려있는 문명의 파편들을 잘못된 역사의 쓰레기더미인 양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시는 절묘한 음악성 순간적인 기억에로의 활기장치, 문학적인 상상력을 풍부하게 펼쳐놓는다.


원래 이 시는 엘리엇이 미국에서 영국으로 귀화한 직후 썼는데 요양 중인 스위스의 로잔이란 도시다. 자동차 사고의 휴유 증으로 로잔의 한 요양소에서 정신의학 치료를 받으면서 자신의 신경장애 현상을 통해서 시인은 전후 유럽문명의 황폐함을 처절하게 깨달은 나머지 `황무지`를 노래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엘리엇은 이 책의 첫 구절에서 왜`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언급했을까? 일 년이 열두 달인데 하필이면 무슨 이유로 `4월`을 가장 `잔인한 달` 이라고 단정한 것일까? 4월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계절이고 꽃이 피는 봄이 아닌가. 왜 잔인하다고 했을까?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시구의 비밀을 알고 나면 사실상 `황무지` 전편의 궁금함이 눈 녹 듯 사라진다. 이 시를 쓸 당시 스위스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던 엘리엇은 어느 날 산책을 나선다. 아. 그런데 이게 무엇인가? 눈 쌓인 알프스 봉우리들을 바라보면서 사색에 잠겨 걸음을 옮기던 시인은 예상치 못한 장면을 보았다. 때는 바야흐로 4월 겨울 동안 쌓인 눈들이 녹고 있었는데 시인은 자신의 바로 앞에서 제1차 세계대전, 그러니까 지난 전쟁의 잔해를 발견한 것이다. 녹슨 철모와 총칼, 죽은 시체들의 뼈가 눈 덤 속에서 드러나는 것을 목격한다. 참으로 잔인한 주검들, 차라리 눈을 감고 있을 걸, 봄이 오지 않았으면 눈이 녹지 않았을 것을, 망각 속에 영원히 파묻혀 있어도 좋을 그것들이 들어온 것이다. 시인은 그러한 장면을 목격하고 한숨을 쏟아 냈던 것이다.


시인은 잔인한 4월을 노래한다.


"아아. 봄이 오는 4월은 잔인하구나! 차라리 봄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전쟁과 잔인한 기억의 잔해들이 모두 파묻혀 있었다면 몰랐을 것인데"


엘리엇은 그런 괴로운 생각을 하면서 자신과 독자들에게 묻는다. "차라리 겨울은 우리들은 따듯하게 했었다"는 역설 혹은 역발상적인 표현으로 길게 한숨을 짓는다.


이 얽힌 뿌리는 무엇이며/이 자갈 더미에서/무슨 가지가 자라난단 말이냐/인간들이여/그대는 알기는 커녕 짐작도 못하리라/그대 아는 건/오직 부서진 형상들의 퇴적/거기엔 해가 쬐어대고/죽은 나무에는 그늘도 없고/귀뚜라미의 위안도/메마른 돌 틈엔 물소리도 없다/다만이 붉은 바위 아래 그늘이 있을 뿐/이 붉은 바위 그늘로 들어오려므나/그러면 나는 아침에 너를 뒤따른 그림자나/저녁에 너를 마주서는 그림자와는 다른 무엇을 보여주리라


특히 그의 시의 경우 언어적 기법에선 감정억제와 시각적 이미지를 중시한 이미지즘을 선호한다. 이미지란 `심상(心象)이란 것인데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감정을 `눈에 보이듯이 그린다`는 뜻에서 `마음의 그림`으로 번역할 수 있는 어휘가 아닐까? 영국으로 귀화한 엘리엇은 런던 은행에 취직, 거기에서 남은 돈으로 `크라이티 어리언`이란 출판사를 차려 유명한 `황무지`를 간행하기에 이른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시인 `에즈라 파운드`의 감수 아래에서 출간을 하게 되는데 `엘리엇`이 원래 썼던 원고의 반절이 바로 파운드의 붉은 색연필로 지워져 나간다.


고전이란 말을 최대한 압축시켜 정의를 내린다면 그것은 `원숙(圓熟)`이라는 말일 것이다.


고전은 문명이 원숙하고 언어와 문학이 원숙할 때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원숙한 정신의 소산이다`는 담론을 시종일관 엘리엇은 강조한다. 그는 20세기 최고의 시로 평가를 받은 `황무지`로 1948년에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았다. 작품의 감동은 전 세계인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다고 할 것이다. 엘리엇이 목격한 `가장 잔인한 4월`이 다시 오지 않을까 조바심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날 인류의 문명을 `기억과 욕망`이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뒤섞여서 뿌리 채 흔들리는 그것으로 파악한 엘리엇, 그는 전쟁과 문명으로 상징되는 인간들의 삶의 현장을 `돌더미 쓰레기`로 비유하다가 자욱한 안개 속의 런던교(런던 브리지)를 이렇게 묘사한다.


전쟁 후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마저 `죽은 사람`으로 바라본다.


전쟁은 많은 상처를 남기는데 왜? 전쟁불사론을 외치는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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