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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호 논설위원 |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이 말은 맹자(孟子)의 이루편(離婁編) 하(下) 29장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이라는 표현에서 비롯된 말로 역지사지를 분석해 보면 먼저 역(易)자는 쉽다(영어로 Easy)는 뜻일 때는 이로 읽는다. 그러나 바꾼다는 뜻으로 쓰일 때는 역어로 읽어야 한다.
그래서 이 고사성어(故事成語)에서는 바꿀 역(영어로 Change)으로 읽고 바꿀 역이다. 그리고 지(地)자는 땅 지자로 자기가 처한 처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역지(易地)는 곧 처지를 바꾼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되고 사(思)자는 생각(영어로 Think)할 사자로 생각하다. 이고 지(之)는 갈지자다. 갈지는 행동하다는 뜻의 의미를 품고 있다.
그래서 사지(思之)는 생각하여 가다. 생각하다의 뜻이 된다. 그러므로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 보고 이해하라는 뜻으로 자기중심에서 말하거나 행동하지 말고 항상 상대방을 존중 배려하며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그런데 우리는 평소에 그러하지 않다. 학교, 직장, 단체 조직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처한 상황이나 생각을 헤아리지 못하고 나의 생각대로 판단하고 행동할 때가 종종 있어 역지사지를 생각해서 매사에 상대방에게 배려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그 교훈으로 간호사와 사과라는 이야기를 보자.
암 병동에서 야간 근무할 때의 일이었다. 새벽 다섯 시쯤 갑자기 병실에서 호출 벨이 울렸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호출기로 물었으나 대답이 없었다. 나는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부리나케 병실로 달려갔다. 창가 쪽 침대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병동에서 가장 오래된 입원 환자였다. “무슨 일 있으세요?” 황급히 커튼을 열자 환자가 태연하게 사과 한 개를 내밀며 말했다. 간호사님 “나 이것 좀 깎아 주세요.” 헐레벌떡 달려왔는데 겨우 사과를 깎아 달라니 맥이 풀렸다. 그의 옆에선 그를 간병하는 아내가 곤히 잠들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런 건 보호자에게 부탁해도 되잖아요?” “그냥 좀 깎아 주세요.” 나는 다른 환자들이 깰까봐 얼른 사과를 대충 깎았다. 그는 내가 사과 깎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이번에는 먹기 좋게 잘라 달라고 했다. 나는 귀찮은 표정으로 사과를 반으로 뚝 잘랐다. 그러자 “예쁘게 좀 깎아 달라”고 한다. 할 일도 많은데 이런 것까지 요구하는 환자가 참 못 마땅했지만 사과를 대충 잘라 주었다. 사과의 모양새를 보면서 마음에 들지 않아 아쉬워하는 그를 두고 나는 서둘러 병실을 나왔다. 얼마 후 그 환자는 세상을 떠났다. 며칠 뒤 삼일장을 치른 그의 아내가 수척한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다.
“간호사님 사실 그 날 새벽에 사과 깎아 주셨을 때 저도 깨어 있었어요. 그날이 저희들 결혼기념일이었는데 아침에 남편이 결혼기념일 선물이라며 깎은 사과를 담은 접시를 주더군요. 제가 사과를 참 좋아하는데 남편은 손에 힘이 없어져서 깎아 줄 수가 없어서 간호사님에게 부탁했었던 거랍니다. 저를 깜짝 놀라게 하려던 남편의 그 마음을 지켜 주고 싶어서 간호사님이 바쁜 거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누워 있었어요. 혹시 거절하면 어쩌나 하고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그날 사과 깎아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이 말을 들은 나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하염없이 흘렀다.
나는 그 새벽 그 가슴 아픈 사랑 앞에 얼마나 무심하고 어리석었던가. 한 평 남짓한 공간이 세상의 전부였던 환자와 보호자 그들의 고된 삶을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옹색한 나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그녀가 울고 있는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며 말했다. “남편이 마지막 선물을 하고 떠나게 해 줘서 정말 고마웠다”고 “그것으로 충분했다”라고 끝을 맺는데 이 이야기처럼 실제 세상에는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무척 다르게 보이는 일들이 많다.
그래서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항상 반대쪽의 입장과 생각을 염려해 두어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남들도 좋아하는 것이 아니기에 아니 싫어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한 번 더 상대방 입장을 생각해보고 나서 자신의 입장과 생각이 옳다고 생각되는 경우에 강조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튼 우리는 친구들과 만나면 남의 이야기를 쉽게 주고받는데 이런 남의 이야기를 함부로 내뱉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자기 입에서 흘러나오는 남에 대한 허물과 비판은 곧 자신의 허물과 비판을 말하는 것과 같기에 될 수 있으면 안 하는 것이 좋고 만일 하더라도 그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칭찬을 하고 그 사람이 있는 자리에선 격려의 말을 해야 한다. 그러면 그게 다시 나에게 칭찬과 격려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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