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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3/03/23  창원일보
[정준식 칼럼]
찰나의 순간

前)부산대학교병원 비상재난안전팀장
구로사와 아카라 감독의 영화 `이키루`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내일 죽는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바로 그것이 오늘 해야 할 일이다" 또 이 영화의 주인공이 노래로 부르며 삶에 대한 너무 뒤늦은 깨달음의 슬픔을 동감한다. 죽음이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이야. 나는 뭘 하며 이제껏 살아왔는가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 속에서 살아온 공무원 생활 30년, 이제 정년 퇴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부하 직원들은 나를 `미라`라 부른다. 아무런 존재감 없이 살아가는 시청의 시민과 과장인 주인공. 그도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다. 하지만 딱히 해법이 없어, 그는 조용히 책상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연신 서류에 도장만 찍어댄다. 그런데 위장병인 줄 알고 찾아간 병원에서 자신이 위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기껏해야 남은 시간은 6개월.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왔고 그는 망연자실한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가? 아내와 일찍 사별하고 그는 모든 삶의 열정을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쏟으며 살아왔다. 그에게 있어서 아들이란 존재는 어떤 희생을 감내하더라도 지켜주고 싶은 보석이다. 그런 아들에게 자신의 병을 알릴 자신이 없다.
 

그때부터 그는 잠시 방황을 한다. 우연히 술집에서 만난 소설가를 따라 술도 왕창 마셔보고, 돈도 흥청망청 써보고, 홍등가를 누비며 이제껏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삶의 희락을 느껴보려 한다. 하지만 소용이 없다. 낯선 방황을 접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부하 여직원이 그를 찾아온다. 그는 그녀와 함께 잠시나마 어설픈 데이트를 한다. 언제나 생동감 있는 삶을 사는 듯한 그녀, 그녀를 따라다녀 보며 솔직하게 활기차게 사는 그녀의 삶의 태도를 배우고자 한다. 그리고 깨닫게 된 그녀의 삶의 원칙은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그는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닫게 된다.
 

바로 그 순간 영화 속에서는 새로운 삶에 대한 축하를 보내 주듯 생일 축하 노래가 흘러나온다. 다시 일터로 돌아온 그가 시작한 일은 오래된 파이프 시설로 고통을 받고 있는 시민들의 민원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시청에서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민원을 위해 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일을 추진한다. 그 후로 5개월 뒤 새로운 공원이 하나 생겨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어느 겨울날 자신이 이룩한 그 작지만 의미 있는 공원 놀이터에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한다.
 

IKIRU(1952) 『삶은 찰나의 것이란 시에 "삶은 찰나의 것 소녀여! 빨리 사랑에 빠져라. 그대의 입술이 아직 붉은색으로 빛날 때 그대의 사랑이 아직 식지 않았을 때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
 

이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내일 죽는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바로 그것이 오늘 해야 할 일이다.
 

사람마다 자신이 지향하는 `삶`의 가치가 있다. 그리고 사회학자들은 사람들이 지향하는 이 같은 삶의 가치는 곧 사회적 가치와 연결된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분석해 볼 때 미국인들은 대체로 `건강한 삶`을 지향하고, 일본인은 `깨끗한 삶`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사는 삶`을 지향한다고 흔히들 이야기한다. 물론 절대적 평가는 아니다. 각각의 삶을 구별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고 상대적으로 쉽게 개념화되지 않아 한편으론 `그 삶이 그 삶이 아닌가?`하고 쉽게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에도 구분이 있다. 세상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과 환산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삶도 엄연히 다른 것들이 존재한다.
 

이런 의미에서 긍정적 심리학자의 창시자 마틴 셀리그만(Seligman, M) 교수가 제시한 세 가지 종류의 삶, 즉 `즐거운 삶(pleasant life)` `좋은 삶(good life)` `의미 있는 삶(meaningful life)`에 대한 화두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가 제시한 세 가지 삶의 내용을 보면 이렇다. `즐거운 삶`을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본능과 욕구에 충실하고, 그것을 통해 되도록 기쁨을 누리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러한 즐거움과 기쁨은 순간적이고 지속되지 않으므로 또 다른 욕구를 충족하는 데 관심을 둔다.
 

`좋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현재의 욕구를 추구하지만, 그것이 삶의 만족과 행복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래서 여가를 즐기는 순간에도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며,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말하자면 이들은 현재의 욕구를 충족하는 데에서 오는 기쁨을 기꺼이 포기하고 장기적으로 미래의 목표에 집중함으로써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려고 노력하는 삶을 산다.
 

마지막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은 만족과 행복의 원천은 자신의 존재 이유와 명예에 대한 인식이 뚜렷하다. 그래서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와 목표가 일관되며,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행동한다. 또 미래의 결과 자체보다 과정 속에서 인생의 참 의미와 가치를 경험하며, 이를 주변 사람과 지역 사회 그리고 미래 세대와 함께 나누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삶에 대한 철학과 생활방식 그 자체로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 그리고 우리의 현재뿐 아니라 미래의 삶도 변화시킬 수 있는 크고 작은 영향력을 갖는다.
 

삶이란 사람마다 생각하는 정의나 달성 방법이 다르며, 정답이 존재하지 않지만 적어도 세 가지 삶의 방법을 실천하려 노력한다는 것은 `잘사는 삶`을 의식하고 그것을 지향하고 있다는 증거여서 더욱 그렇다. 거기에 경제적 풍요로움이 더해지면 더욱 좋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니코마스 윤리학`에서 잘 사는 삶과 좋은 삶의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잘 사는 삶`은 배고픔이 없는 넉넉한 삶도 포함된다. 그리고 `좋은 삶`은 그 바탕 위에 명예로운 삶, 다시 말해 도덕적 인격적 존엄과 타인의 존경이 더해질 때 가능하다고 했다.
 

흔히 말하는 인문학의 3가지 물음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그 중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셀리그만 교수가 제시한 세 가지 종류의 삶의 방법은 의미가 크다. 특히 `의미 있는 삶`은 우리가 살아가는 빈곤과 기아, 질병, 환경, 문맹, 폭력이 난무하며 고통받는 이들 소외 받는 이웃이 증가하는 현대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거기에 나눔과 봉사를 통해 행복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더해진다면 힘들고 어려운 이 세상이 그래도 살맛 나는 세상으로 바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이 처한 입장을 수용하고 공동체 삶을 통해 타인을 신뢰하며, 공동체 감각으로 타인을 위해 공헌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최고의 행복에 이른다고 한 것처럼 `의미 있는 삶`도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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