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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위원 |
창에 비치는 햇살이 잘게 부서지는 어느 날 저녁 무렵, `잘못에 대한 사과(謝過)`가 무엇인가라는 초록의 영감이 떠 올랐다. 사과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빈다는 뜻이다. 한자를 보면 사례할 사(謝)와 지날 과(過)를 써서 자기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고 그것이 잘못이라는 점을 인식하였으며, 그 상황을 모른 척 넘어가지 않고 피해자나 관련자에게 자신이 잘못했다고 고백하고 용서를 비는 행위를 말한다.
잘못한 사람은 사과하면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자신이 가진 권위를 잃거나 더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란 생각에 사과를 꺼리게 된다. 때로 사과하면서도 자존심을 지키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발뺌하기도 한다. 그러나 피해를 본 사람은 사과하는 사람이 구체적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표현할 때 용서할 마음이 생긴다. 사과하면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피해자의 처지에 공감하고 진심을 담아서 사과해야 한다.
서아시아 지역 유대 문화권에서 나온 `바벨 탈무드`를 보면 죄와 사과와 용서에 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과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잘못을 다시 저지르면 안 되고, 속죄일을 믿고 이웃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 등이다. 그러나 사과하는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이야기는 따로 있다.
(`요마` 87 앞면) 한 번은 이르메야 랍비가 압바 랍비를 모욕하는 말을 해서 압바 랍비가 불평하는 일이 생겼다. 이르메야 랍비는 곧 잘못을 깨닫고 압바 랍비의 용서를 구하기 위해 그의 집 앞 뜰에 가서 앉았다. 그런데 때마침 어떤 여종이 더러운 물을 들고 나와 마당에 뿌렸고, 그 물이 이르메야 랍비의 머리에 쏟아졌다. 그는 그들이 자기를 하수구로 만들었다고 하면서도 토라 본문을 암송하며 자리를 지켰다.
그는 가난한 자를 쓰레기 더미에서 일으켰다. 압바 랍비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그를 만나려고 밖으로 나왔다. 압바 랍비는 그에게 다가가 이제 자기가 화해를 청해야겠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토라에 `너는 가서 고개를 숙여 절하고 네 이웃에게 구하라`라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사람이 더러운 물을 뒤집어쓰면서도 진심으로 사과하려고 노력하는 모습과 그의 말을 듣기도 전에 그의 진심을 알아보고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는 아름다운 광경을 그리고 있다. 이 큰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은 화려한 말솜씨나 물질적인 보상이 아니라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의 진심 어린 태도였음을 말해준다. 두 사람이 손을 맞잡는 순간 사과라는 축제가 벌어졌고, 사과하기 전 단계의 개인은 사과한 이후의 개인으로 본질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또한 잘못을 사과하고, 그 사과를 받아들이는 순간,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이 두 사람과 또 그들을 둘러싼 사회는 단절에서 소통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전 단계에서 절대 가능하지 않았던 협력과 창조라는 희망과 평화를 얻게 된다. 사과가 개인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거대한 원동력이 된다 그렇다.
사과는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고 자신을 위한 것이다. 사과하기 전에는 온갖 증오와 복수심이 가득했지만, 사과한 후 자신이 손에 쥐고 있었던 칼날을 스르르 놓게 된다. 요즘 `사과`라는 단어가 뉴스에 빈번하게 등장하여 어리둥절한 경험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사과`를 따라오는 동사가 `하다`가 아니라 `하세요`라는 명령이다. 그러니까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사과를 요구하는 정치인들의 고함이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이 상황이 당혹스러운 이유는 우리 손으로 뽑은 우리의 대표들이 우리가 맡긴 일을 하지 않고 기이한 행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단계인 인정하기는 즉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물을 튕겼을 경우 `내가 물을 튕겨서 네가 기분이 상했구나`라고 하는 식이다. 여기서 주어는 `나`여야 한다. 왜냐하면 주어가 `너`가 되어버리면, 상대가 잘못한 것으로 만들어 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셈이 된다. 또한 잘못 인정은 육하원칙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내가 언제, 어디서, 무슨 잘못을, 어떻게, 왜. 그리고 추가로 누구에게. 이 모든 것이 충족되어야 비로소 잘못을 인정한 셈이 된다.
두 번째 단계인 즉 사과이다. 자기가 얼마나 반성하고 있는가를 나타내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사과를 뜻하는 상투적인 표현, 즉 `미안해`, `죄송하다`를 말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정말 진심으로 미안해`와 같이 수식어를 붙일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핵심은 `미안해`이다. 이는 나의 잘못을 인정함으로써 드는 나의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약속하기는 즉 내가 잘못한 일에 대한 배상 및 재발 방지 대책 수립, 즉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를 의미한다. 배상이란 물을 튕겼을 때 세탁비나 옷값을 배상하겠다고 하거나, 닦아주거나, 이에 대한 배상으로 무엇을 하겠다고 하는 행위를 말한다. 재발 방지 대책 수립으로는 `물을 튕기지 않겠다`, `앞으로 앞을 잘 보고 다니겠다` 등이다.먼저 사과하는 게 자존심을 세우고 인간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것이다.
http://www.changwonilbo.com/news/32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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