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ㆍ색소폰 연주자ㆍ지휘자 |
필자가 색소폰을 처음 입에 댄 날이 지금도 생생하다. 40년여 전. 20대 중반의 비오는 여름날 고향가던길. 당시 라디오도 귀하던 시절이었다. 라디오에서흘러나오던 애젊은 색소폰 연주에 심취해 시작한 게, 전공까지 하게 되어 40년여동안 수많은 연주와 레슨까지 하게된 동기다.
내겐 음악이 곧 삶의 활력소요, 에너지의 샘물처럼 간절했다. 돌아보면 인생의 굽잇길에서 종종 마주치던 허전함과 무력감, 그 텅 빈 마음을 채워주는게 늘 색소폰이다.
참으로 미묘한 들숨과 날숨을 통하여 나만의 소리를 만드는 게 곧 득음과 가음을 위한 험난한 길이다. 득음은 소리를 나의 것으로, 가음은 가장 아름다운 연주를 하는 것이다. 이는 연주자의 입장이 아니라 듣는 이의 감정을 몰입시키는, 곧 연주자의 `절제된 호흡과 연주`를 단련시키는 것이다.
수만시간의 연습은 곧 무대가 되었고, 무대는 수많은 축하 연주와 봉사로 이어졌다. 어느새 2000여회가 넘는 크고 작은 연주다. 특히 요양병원, 양로원, 마을회관, 심지어 폐교된 시골 학교 운동장까지. 조명이 없고, 관객이 단 세 명일지라도, 연주를 하던 시절이 종종 그립다. 죽음을 앞두고 병상에 누운 어르신이 삶의 종착역으로 가는 길, 무지개 다리를 건너기 직전에 흐릿한 눈으로 따라 부르던 `불효자식`, 눈물 흘리며 손을 꼭 잡던 할머니의 주름진 손…. 그 순간들을 통해 필자는 음악과 연주의 진짜 힘을 알게 됐다.
무대 위에서의 큰 박수와 찬사보다, 그들이 들려주는 "당신 덕분에 오늘 하루는 웃었어요"라는 말과 무언의 표정들이 내겐 더 큰 선물이었다. 그 소박한 미소들이 내 음악 인생의 전부가 아니었던가 싶다.
인생이 그렇듯, 돌아보면 그동안 연주자의 길도 순탄치 않았다. 손가락이 굳어가고 폐활량이 줄어드는 걸 느끼며 점점 나이 듦을 실감했고, 스스로 만족한 연주가 되지 않을 때는 무척 힘겨운 날도 많았다. 때론 가족과 주변의 무관심에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색소폰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새벽녘 조용한 골방에서 불어보는 선율은 내 마음의 기도를 대신했고, 고된 하루를 버텨낼 힘이 되었다.
이제는 칠순길로 가는 길에 무엇보다도, 이 나이에 무대에서 사람들과 눈을 마주하고, 그들과 감정을 나눌 수 있다는 건 더없이 큰 축복이요, 삶의 보람이다. 음악과 연주는 필자에게는 `여전히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자존감을 안겨준다.
지금 필자는 황혼녘의 실버연주자요, 지휘자다. 흰머리가 더 늘었고, 연주 중 호흡이 벅찰 때도 있다. 하지만 색소폰을 입에 무는 순간, 내 안에 감춰진 분노의 시간은 멈춘다. 어제도 오늘도 나는 내 인생을 연주하고 있다. 삶의 애환과 기쁨이 고스란히 담긴 그 득음과 가음 하나하나가, 이제는 누군가의 위로가 되기를 바란 뿐이다.
누군가 "교수님, 아직도 연주를 하시냐"고 묻는다. 종종 빙긋 웃으며 말한다. "아직도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니까요" 그렇다. 황혼녘에 돌아보니 인생길은 소풍길이다. 지금 필자는 중국 칭다오에서 제남행 열차 안이다. 두고온 치솔과 소싯적 연인의 그리움을 생각하듯, 손가락과 발가락은 연주하듯 계속 움직이고 있다.
어쩌면 인생은 색소폰 연주처럼 숨이 닿는 순간까지 불어야 할 한 곡의 노래요, 오케스트라 같다. 그리고 나는 내 색소폰과 함께 마지막 삶의 음표까지 연주하고 싶다. 완성도가 끝나지 않은 애창곡처럼, 내 인생도 아직은 연주 중이다.
http://www.changwonilbo.com/news/321103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