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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前 마산중앙중학교 교장ㆍ경남대학교 겸임교수 |
아름답고 한적한 산간오지, 들판의 바람을 가르고 덜커덕 덜커덕 거리며 달리는 기차의 기적 소리는, 어둡고 찌던 우리들의 마음에 평화와 안식을 안겨준다. 학창 시절 그 기적 소리는 우리들에게 열정과 사랑, 낭만과 미래를 있게 해 주었다.
정거장 앞 마당에는 허리가 휘어진 촌옹村翁들이 벌여 놓은 보따리가 덤과 인정으로 넘쳐 나기도 했다.
삶의 온기가 있고 만남과 이별의 숱한 애환을 함께했던 곳이라, 그리움은 지워지지 않고 지금도 우리 곁에서 속살대고 있다. 지난 세월은 상처를 아물게도 만들지만 간직하고 싶은 것도 너무나 많아 더 아름다운 지도 모른다.
오늘은 희미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보석 같은 발자취를 더듬어보며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필자는 기차 통학을 하면서 고등학교 3년을 보냈다. 집에서 기차역까지는 십 리 길이 넘어 새벽같이 일어나 허겁지겁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어둑새벽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을 걸어 기차를 타곤했다.
그 때는 통근 열차라 해 군부대에 다니는 군무원 아저씨와 곡물과 채소를 팔러가는 상인들이 많이 이용을 했다. 그 당시 기차는 증기 기관차로써 석탄을 이용해 운행했다. 객차는 두어 칸을 제외하고는 화물 열차를 개조해 긴 의자만 몇 개 놓였고, 전구조차 없는 창고 같은 열악한 공간이었다.
터널을 통과할 때는 암흑 천지는 물론 비탈져 올라가는 길엔, 힘이 없어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기도 해 여름 같은 계절에는 무더위로 인해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여학생들은 흰 교복 칼라에 석탄 가루가 날려 묻을까 신경을 곤두세기도 했다. 한편 장난끼 많은 친구들은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짓궂은 장난을 해 여학생들의 비명으로 한바탕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통학생의 선후배 간 규율은 군대보다 엄격해 3학년 통학 부장은 후배들에게는 우상적인 인물이었고, 통학 부장이 누구냐에 따라 희망과 절망이 교차되기도 했다. 그리고 기차가 일찍 도착하기 때문에 도시에 거주하는 학생보다는 1시간 정도 먼저 학교 생활이 시작됐다. 그러나 그 시간은 학습 시간으로 활용되지 않고, 선배들의 눈에 벗어난 후배들의 기합받는 시간으로 활용돼 공포의 시간이었다.
기합의 방법도 다양해 후배들의 고통스러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 하나는 교실에 후배들을 앉혀 놓고 눈을 감게 한 다음, 책상 위에 동그라미를 치고 눈을 뜨게 했다. 눈을 감고 있는 동안은 간이 콩알만 해 숨이 막힐 정도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눈을 뜨는 순간 동그라미에 따라 "와" 하는 "살았다" 와 "아 죽었다"의 안도와 공포의 순간을 맞기도 했다. 동그라미가 많은 순서대로 구타를 당하거나 호된 기합을 받았는데, 한두 개 정도는 무사히 넘어가는 아량을 베풀어 줬다.
또 하나의 스릴 넘치는 사건은 하급생은 승차권을 사서 통학을 하지만 상급생은 일년 내내 무임 승차였다. 그러나 불시에 검사를 받거나, 깐깐한 차장을 만날 때는 요리조리 피해 다니다, 종착역에 가까워지면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려 철조망 밑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묘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이 곳에선 그 때의 정겨운 기적 소리는 이제 들을 수 없다. 먼 기억 속에 가물거릴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줄을 지어 타고 내렸던 그 기차역(진해역), 많은 사람들로 붐볐던 넓은 광장은 새 단장을 하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지만 덧없는 세월 탓인지, 아니면 현대사의 격변 때문인지, 그렇게 북적대던 그 역과 광장에는 찾아오는 손님 한 사람도 없다. 탄식과 적막감으로 아픈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그래도 사람은 다 떠나고 찾는 사람은 없지만, 역과 광장은 그 때의 역사를 굳건히 지키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오늘은 순수한 학창 시절의 영혼을 꽃피게 했던, 텅 빈 이곳을 거닐며 60여년 전 고락을 함께한, 선후배, 동기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를 떠올리며 깊은 감회에 젖어본다.
http://www.changwonilbo.com/news/32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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