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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1/12/02  창원일보
매화를 그리며
손영학 동명대 펀 스피치 선임교수

그리운 도숙 누님, 겨울의 초입에 서서 매화를 그리워합니다. 이 동생의 가슴에 매화를 품음은 벌써부터 다가올 봄을 그리워함이지요. 누님, 봄은 마술사에요. 매서운 하늬바람을 인내하며 기어이 겨울과 싸워 이긴 나목들에게 생명의 기운이 감돌게 하고 만물을 잠에서 깨어나게 하지요. 봄은 온 산과 들에 갖가지 꽃을 피우고 연초록 새잎을 돋아나게 하며 우리 사람들의 잠자던 영혼마저 흔들어 깨우는 힘을 가지고 있지요. 가지에 잎이 피기도 전에 앞 다투어 피어나는 봄꽃을 보면 자연이 가져다주는 경이로운 기적에 가슴 떨곤 하지요.

 

진달래, 개나리, 철쭉,  제비꽃, 민들레, 목련 등 많은 봄꽃들이 있지만 나는 매화를 가장 사랑합니다. 매화는 장미나 백합처럼 그 자태가 화려하지도 않고 향기 또한 고혹(蠱惑)하지 않지만 은장도를 품은 소복한 여인처럼 그 누구도 감히 함부로 범접(犯接)할 수 없는 단아(端雅)한 기품이 서려 있는 꽃이기 때문이지요. 해마다 봄이 오면 누님의 집을 에워 싼 뒷산은 온통 매화에 의해 점령당하곤 하지요. 경남 하동군 북천면 화정리, 그 중에서도 하촌(下村), 중촌(中村)도 아닌 상촌(上村)마을이니 가히 하늘과 맞닿는 끝동네가 누님의 동네에요. 누님의 일생은 풍진(風塵) 세상을 이겨낸 매화 같은 삶이었어요. 스물두 살 꽃다운 나이에 자형과 결혼하여 시조부님 3년 상, 시조모님 3년 상. 그리고 시아버지 3년 상에 시어머니 1년 상, 도합 10년 상을 치르면서 아침, 저녁으로 빈소(殯所)에 정성스레 상을 차려 올려야 했고 3명의 시동생과 시누이까지 뒷바라지해야 했으니 그 인고(忍苦)의 세월을 어디에 비길 수 있겠습니까! 누구보다 아름다워야 할 누님의 젊은 시절은 한 마디로 질곡(桎梏) 같은 삶이었어요.

 

장대한 기골, 준수한 용모와는 달리 일이라고는 할 줄 몰랐던 자형은 술 따라 친구 따라 세상을 사는 사람이었고 보니 모든 험한 일은 고스란히 누님의 몫이었어요. 뇌졸중으로 쓰러진 자형이 작년 8월, 돌아가시기까지 만 10년 세월을 병수발을 하면서도 한 마디 불평, 불만은커녕 자형이 살아있음을 위안으로 삼으셨던 누님, 남자들도 감당하기 힘든 논농사, 밭농사는 물론이요, 뒷산자락을 깎아 300여그루의 매화를 심어 놓고 매화처럼 아름다운 시심(詩心)을 가슴 깊이 간직하며 살아오신 우리 누님…… 이른 봄, 싸아한 바람결에 꽃송이가 나비되어 날면 향긋한 매화향이 누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겠지요.

 

매화도 눈 같고/ 눈도 매화 같고/ 흰 눈 내리기 앞서/ 매화가 피네./ 알지라, 하늘과 땅의/ 맑은 기운임을/ 모름지기 눈 밟으며/ 매화 보러 오리라./ 조선조 초기의 문신(文臣) 서거정(徐居正)은 매화를 이렇게 노래했어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가리켜 사군자(四君子)라 하거늘 그 순서가 `매(梅),란(蘭),국(菊),죽(竹)`이니 군자 중에서도 가장 으뜸가는 군자가 매화가 아니던가요! 누님, 봄은 언제나 매화를 앞세우고 우리를 찾아옵니다. 그러나 정작 매화는 따뜻한 봄기운이 온 누리에 퍼져나가면 훈풍에 분분히 날리며 정든 가지를 떠납니다. 별리(別離)의 아픔! 봄이 시작되는 환희에 가슴 떨면서도 매화가 지는 아픔은 깊은 상처로 남습니다. 이 세상에 사별(死別)만큼 큰 아픔이 어디 있을까요!

 

누님이 평생을 바쳐 사랑한 자형은 작년 여름, 영원의 세계로 떠나셨고 2년 동안 모시던 어머니마저 가시고 마셨어요. 이 외로운 빈자리에 누님처럼 홀로 되신 친구 동남 누님과 살가운 정을 나누며 지내시니 얼마나 큰 위안이 되시는지요. 누님, 매화가 떨어진 아픈 상처의 자리에 탐스런 매실이 열리듯 인고(忍苦)의 삶을 살아오신 누님의 여생에도 행복의 매실이 열릴 것을 믿습니다. 이제 앙상한 가지는 찬바람에 처연하게 떨고 있겠지만 나는 벌써부터 매화를 기다리며 머지않아 다가올 벅찬 봄의 기적에 가슴 설렙니다. 매화 같은 나의 누님, 항상 건강한 웃음 띠며 행복하게 사십시오. 이제 머지않아 매화가 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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