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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지방기상청 예보과장 |
겨울철에 눈이 많이 내리는 일본 북부지방에서는 겨울이 다 지나갈 때까지 햇볕을 제대로 구경하기 힘든 곳이 많다. 시베리아를 출발해 동해바다를 거쳐 홋카이도에 도착한 겨울바람은 사람과 동물들에겐 혹독하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혹독한 이 바람은 긴 겨울 동안 곡식의 곰팡이 발생을 막고, 조직을 응축시키는 역할을 하여 설국 특유의 고유한 맛을 지니게 만든다.
바람뿐만 아니라 기온도 식품에 큰 영향을 준다. 특히 겨울철에 기온이 많이 내려가는 곳에서는 한난의 차가 크기 때문에 식품성분 내 물리적 파괴가 일어나 더 좋은 맛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상주의 곶감이나 대관령 황태는 덕장에서 건조되는 과정에 바람의 영향도 크지만 주야로 오르내리는 기온 차이로 겨울 동안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맛이 더욱 숙성되어간다. 식품이 낮은 온도에서 얼게 되면 내부적으로 단백질 사슬이 물리적으로 갈라져 씹는 맛이 달라지는 등 독특한 맛을 띠게 된다.
이렇게 밤에 기온이 많이 떨어지는 자연현상을 기상학적으로는 `복사냉각에 의한 기온하강`이라 한다. 바람이 없고 맑은 날 밤에 지표면으로부터 대기 중으로 많은 에너지가 방출되어 냉각되는 현상으로 새벽녘이나 일출 1시간 정도 전에 가장 낮은 기온이 나타난다. 복사냉각은 사계절 나타나지만 겨울철에 내륙분지나 구릉지역에서 그 효과가 현저하다.
바람에 의한 식품 건조의 예로는 영광굴비의 예가 대표적이다. 곡우 철에 영광 칠산 앞바다에서 잡힌 조기를 칠산 바다 해풍에 서서히 말린 것이 영광굴비이다.
이 지역의 해풍은 낮에는 습기를 적게 함유하고, 밤에는 습기를 많이 함유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조기가 낮에는 건조되었다가 밤에는 높은 습도로 풀리는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며 육질이 숙성되어진다. 영광굴비가 명품으로 태어나는 이면에는 칠산 바다 해풍 기후자원이 적절히 받쳐주기 때문이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통영 추도는 섬 전체가 물메기 덕장이 된다. 보기에 흉하게 생긴 고기라서 한동안 잡히면 배에서 던져 버리던 물고기였지만 지금은 귀한 대접을 받는다. 해풍에 잘 말려 상품으로 태어나면 마리당 1만원으로 영광굴비와 견줄 만해졌다.
물메기 등을 따서, 햇볕에 널고, 해풍에 말리는 과정을 겨울 석 달 동안 한다. 통영에서 20km 정도 떨어져 낮에 육지에서 불어오는 적당히 건조한 바람과 한려수도 해풍의 작용으로 천혜의 물메기 덕장이 되었다. 예전부터 이곳 사람들은 말린 물메기를 장독대에 보관했다가 설날 제사상에도 올렸다는 이야기가 있는걸 보니 역사가 꽤 오래인 것 같다.
예전에 해양기상특성 연구차 이 지역에 체류할 때 이장님 사모님께서 끓여 주시던 물메기탕 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무를 넣고 국을 끓이면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포항 구룡포항은 지리적으로 포항의 남쪽이자 동쪽바다에 자리잡고 있다. 겨울이 되면 포항 방면에서 북서계절풍이 공개산, 응암산을 넘는 과정에서 습기를 적당히 버리고 구룡포항으로 넘어오는 지리적 여건을 갖추고 있다.
지역적으로 기후자원이 꽁치 건조에 알맞아 구룡포에서 호미곶까지 과매기 덕장이 넓게 펼쳐진다. 이곳의 최근 10년간 기후자원을 조사해 보면 겨울철 습도가 낮 53%, 밤 63%로 밤에 습도가 높게 나타나는 특징을 보이며, 바람은 북서풍이 평균 2.5m/s로 약한 편을 보인다.
기온은 일반적으로 해안지방이 내륙지방에 비해 높게 나타는 것이 보통이지만 구룡포의 경우에는 겨울철 최저기온이 포항(-0.7℃)보다 3.6℃나 낮은 -4.3℃로 나타났는데 이는 중부지방의 서울(-4.6℃), 청주(-4.6℃)지방과 비슷할 정도로 낮은 기온이다. 낮은 기온은 밤에 과매기를 잘 얼게 만들고, 낮에는 녹는 과정이 반복되어 명품 과매기가 태어나는 것 같다.
식품을 단지 바람에 노출시키는 정도로 사람이 섭취할 수 있을 정도의 깨끗한 위생 상태가 유지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바람은 곰팡이와 같은 천적으로부터 식품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에 의하면 식품의 보존에 가장 힘든 것이 곰팡이로부터 보존인데 직사광선에 쬐는 것 보다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두는 것이 식품의 보관에 더 유리하다고 한다.
기온이 높고 습기가 많은 오키나와에서 집안에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 것은 집안 내외부로 통풍이 잘 되기 때문이다. 수산물의 발효ㆍ건조에는 온도, 습도, 해풍 이 3가지 요소가 잘 맞아 떨어져야 한다. 영광굴비, 추도 물매기, 구룡포 과매기 역시 부드러운 해풍과 적당한 습도, 온도 조건들이 탄생시킨 걸작들이다.
우리나라의 해안선 길이는 14,962km로 지구둘레의 37%에 이를 정도로 길다. 해안선을 따라 포구마다 고을마다 아직 알아내지 못한 기후자원이 많이 남아있을 것 같다. 지역 기후자원을 찾아내 영광굴비와 같은 명품 수산물을 탄생시킨다면, 어민행복 실현은 한 걸음 더 빨리 다가올 것 같다.
http://www.changwonilbo.com/news/113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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