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옛날에 도깨비가 한 처녀를 강제로 데려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도깨비가 처녀한테 "자네는 무엇이 가장 무서운가?"라고 물으니 처녀는 "나는 사람이 가장 두렵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곤 처녀는 도깨비에게 "당신은 무엇이 가장 두렵습니까?"라고 묻자 도깨비는 "나는 팥죽이 가장 무섭다"고 답했다.
이에 처녀는 도깨비가 낮에는 빈둥빈둥 놀다가 밤에 잠시 나간 틈을 타서 팥죽을 쒀 온 집안 사방에 뿌렸다.
밖에서 돌아온 도깨비는 팥죽이 뿌려져 있는 광경에 놀라 집 안으로 들어오질 못했다.
그 당시 도깨비의 집에는 인간 세상의 온갖 진귀한 보물들이 있었는데 처녀는 이 모든 보물을 차지하게 돼 부자로 잘살게 됐다고 한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매년 동짓날에는 나쁜 도깨비가 집안의 살림을 뺏어가지 못하게 하려고 집마다 팥죽을 쒀 온 사방에 뿌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우리 도시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가술리에서 구전으로 전해져 오고 있는 동지 관련 이야기다.
흔히 `작은 설`이라 명명되는 동지에 먹는 팥죽에 대한 유래담은 세간에 차고 넘치지만, 그 많은 얘기 중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팥죽이 역귀를 쫓고 역병을 예방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AI)이 판을 치는 시대에 이 무슨 미신 같은 이야기인가 싶지만 세상 사람 대다수가 크게 의심치 않는 눈치다. (다들 동지에 팥죽 한 그릇들 드시니 말이다.) 그럼 "위 이야기들이 미신인 것일까?" 라고 필자는 묻고 싶다.
한의학에서는 팥을 `적소두`라고 한다.
팥은 청열해독(열사를 제거하고 열독을 풀어주는 것), 해표배농(땀을 내고 염증을 배출시킴), 행수소종(부종을 빠지게 함)의 효과가 있다. 문헌에 따르면 팥은 열독과 부스럼을 없애고 고름을 배출시킨다. (끓인 즙으로 소아의 피부에 누런 진물이 나는 곳을 씻어 주되 3회를 넘기지 말 것)
또한 팥은 열사가 장부에 침범해 발생하는 갈증을 치료하며 설사와 이질을 멎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아랫배가 그득한 것과 구토 증상에 좋으며 온병과 전염병에 걸리지 않게 한다.
어디 이뿐인가? 산후의 부종까지 다스리니 그 효과는 실로 대단하다 하겠다.
이런 탁월한 효능 덕분일까? 팥은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로 그 가치가 이어져 오고 있는 듯하다.
팥은 약이 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시대에 가가호호 손쉽게 재배할 수 있었다.
이는 아마도 은근슬쩍 민간에 풀어낸 의원들의 노력(팥 값이 너무 비싸질까 두려워) 때문이었으리라. 그 시대의 약자에 대한 배려가 담긴 의원들의 재능기부 덕에 이렇듯 팥은 우리에게 친숙한 작물이 된 것이다.
필자는 팥죽은 좋아하지만 새알(옹심이)은 싫어한다. 어린 시절 나이 수대로 먹는 새알이 필자에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역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애기동지라 해서 팥죽 대신 팥 시루떡을 해 먹는다고 한다.
새알을 싫어하는 이들, 특히나 아이들이 있는 집은 팥 시루떡이 더 좋다고 한다.
팥 시루떡에는 혹시나 새알이 아이들 목에 걸릴까 걱정하고 배려하는 우리 조상들의 깊은 마음이 담겨 있다.
이에 필자도 애기동지를 맞아 슬쩍 마음 하나 풀어 놓는다.
팥을 삶을 때 생강을 조금 넣으면(적소두탕) 열독이 잘 풀려 신우신염 등에 좋다 하겠다.
또 율무를 같이 넣어 죽을 쑤면(적소두 의이인탕) 종기나 부스럼에 좋은 효과가 있으며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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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디지털 창원문화대전 `동지 팥죽 유래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