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돼 사용 중지된 인플루엔자(독감) 백신이 최소한 수백명에게 접종된 것으로 드러났다. 어처구니없는 규정 위반으로 사상 초유의 백신 접종 중단 사태를 빚고 코로나19와 인플루엔자의 동시 유행을 의미하는 `트윈데믹`에 대한 우려를 야기한 데 이어 후속 조치마저 부실해 이중삼중의 불안과 행정력의 낭비를 불러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상온 노출 인플루엔자 백신을 접종받은 사람은 지난 27일 기준 407명에 이른다. 정부는 당초에는 문제가 된 백신 접종 사례가 없다고 밝혔으나 이후 조사 과정에서 지난 25일 224명, 26일 324명 등으로 날이 갈수록 접종자가 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질병청이 지난 21일 제보를 통해 뒤늦게 백신이 상온에 노출된 사실을 확인하고 접종 중단을 결정했으나 이미 그 이전에 일선 의료기관에 문제의 백신 가운데 일부가 배송돼 접종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접종 중단 결정 이후의 사태 전개는 더욱 문제가 있어 보인다. 질병청은 정부 조달 계약으로 공급된 물량의 로트(Lot) 번호를 파악해 지난 22~23일에야 보건소와 의료기관에 알리고 해당 백신을 사용하지 말도록 안내했다.
일부 의료기관도 국가 조달 백신 물량과 자체적으로 구매한 물량은 구분해서 보관ㆍ관리하도록 한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당국과 일선 의료기관 모두의 관리 체계 부실과 상호 의사소통의 미숙이 사태의 원인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질병청은 문제의 백신 접종자들에게서 이상반응이 있었다는 신고는 없었다고 밝혔고 정은경 청장도 "현재 공급되는 백신은 대부분 1회용, 1인용으로 이미 주사기에 충전돼 밀봉된 상태로 공급되기 때문에 오염 가능성은 굉장히 작다"면서 `과도한 불안감`을 가질 필요가 없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문제인 만큼 `과도한 낙관`은 더욱 경계해야 할 일이다.
질병청이 지방자치단체에 문제의 백신 접종자들의 건강 상태를 매일 점검토록 한 것은 늦었지만 적절한 조처다. 다만, `접종일로부터 1주일간 유선 또는 문자로 집중적인 모니터링`을 하도록 한 지침에 지나치게 얽매여서는 안 될 것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그 이상으로 반응 감시 수준을 높여야 한다. 상온 노출 백신 접종은 이례적인 일이어서 장기적으로 부작용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일부 전문가의 지적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그리고 이번 일을 전염병 백신 유통ㆍ관리 체계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돌아보고 개선하는 계기로 삼기를 바란다.
http://www.changwonilbo.com/news/236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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