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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2/01/18  창원일보
[이상호 칼럼]
블랙리스트

논설위원
블랙리스트(blacklist)라는 말은 주의나 감시를 필요로 하는 인물 또는 단체를 적은 명부를 말하는데 블랙리스트라는 말이 처음 출현한 것은 영국이라는 나라다.
 

영국은 본래 종교가 가톨릭이었는데 1502년 헨리7세의 아들인 아서가 죽자 그 뒤를 이어 헨리8세가 왕위를 이어 캐서린(아서의 딸)과 결혼을 했는데 캐서린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1525년 캐서린의 시녀이자 자신의 애인이었던 앤 볼린과 결혼을 하려고 하는데 그 당시 가톨릭교회에서는 이혼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자 화가 난 헨리8세는 로마교회(가톨릭)와 결별하고 영국의 신학자들과 법원을 이용해 직접 국법으로 다스리는 성공회(영국 국교회)를 만들어 캐서린 왕비를 궁에서 추방(1531년)하고 1533년에 앤 볼린과 결혼해 딸(엘리자베스 1세)을 낳는다. 하지만 앤 볼린 역시 아들을 낳지 못하자 그녀는 결국 1536년 죄를 씌워 처형을 당하고 뒤이어 헨리8세는 앤 볼린의 시녀였던 제인 시모어와 결혼해 아들(에드워드 6세)을 낳지만 그의 부인 제인 시모어는 출산 후유증으로 인해 1537년에 그만 죽고 만다. 그러다가 이후 헨리8세는 독일의 클리브즈 백작의 누이였던 앤과 결혼을 하지만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자 결혼을 무효화하고 뒤이어 1540년에 앤 볼린의 외사촌인 캐서린 하워드와 결혼을 한다.
 

하지만 캐서린 하워드 역시 좋지 않은 행실이 발각돼 간통죄로 1542년 처형하고 마지막으로 헨리8세는 1543년 캐서린 차아와 결혼을 해 잠시 행복을 누리지만 1547년에 생을 마감하고 뒤이어 헨리8세와 제인 시모어 사이에 낳은 에드워드6세가 왕위에 오른다.
 

하지만 그는 병으로 일찍 죽고 뒤이어 헨리8세의 첫 번째 왕비인 캐서린과의 사이에 낳은 메리(블러드 메리)가 여왕이 되고 뒤이어 앤 볼린과의 사이에 낳은 엘리자베스1세가 즉위해 그녀는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많은 업적을 이룬다.
 

즉 그 당시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격파시켜 대서양을 통해 아메리카대륙으로 가는 해상 길을 개척하고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어 원료를 쉽게 얻는 등 영국을 유럽에 최강국으로 만들지만 그녀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다보니 배우자나 자녀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사후 후계자자 없다보니 영국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친척인 스코틀랜드 출신인 왕 제임스1세가 왕에 오르고 그는 재임기간에 왕권신수설(왕은 신으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은 존재라는 뜻으로 신민은 저항권 없이 왕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또한 청교도들을 박해하며 영국 국교회를 믿으라고 강요하자 영국의 귀족들과 의회, 청교도들은 왕권신수설에 불만을 품고 난동을 일으키자 제임스1세는 왕위에서 물러나고 뒤이어 그의 아들 찰스 1세가 즉위하는데 그는 아버지 제임스1세를 따라 왕권신수설을 강력히 지지하며 의회와 계속 충돌을 일으키고 또한 청교도들을 계속 탄압한다.
 

그러자 1642년 올리버크롬웰을 중심으로 한 의회파가 군대를 일으켜 1649년 찰스1세를 처형(청교도 혁명)하고 올리버크롬웰은 잉글랜드 공화국을 수립해 자기가 직접 호국경(護國卿, 대통령과 동일한 관직인데 다만 국민 선거가 아닌 의회 선거로 추대하고 입법권, 행정권, 관리임명권, 군사권, 외교권을 가짐)이 돼 공화정을 통치하게 된다. 하지만 크롬웰 또한 독재자와 다름이 없었다. 의회를 해산하고 너무 지나치게 엄격하고 극단적인 금욕 생활을 강요해 극장이나 운동 경기 또는 춤 등 청교도 입장에서 죄악시 될 수 있는 행동들을 금지하고 대중음악조차 금지시키는 등 강압정치를 해오다 결국 그는 민중들에게 민심을 잃어 죽고 뒤이어 1660년 의회는 찰스1세의 아들인 찰스2세를 왕위에 즉위시키는데 의회로서는 잘못된 임명이었다.
 

찰스2세가 왕위에 오르자 자신의 아버지인 찰스1세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던 재판관 58명의 명단을 작성한 것이 블랙리스트의 시초, 유래로 이들의 명단을 적은 종이에 죽음을 뜻하는 검은색 카버를 씌웠다고 해서 블랙리스트라고 불렀는데 그 명단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13명은 처형당하고 25명은 종신형에 처하는 등 피의복수를 이루었다.
 

이처럼 살생부에서 시작된 블랙리스트는 주로 보복이나 제거를 위해 아주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었는데 19세기 미국에선 기업의 사용자들이 파업한 노동자들의 인물 명부를 작성해 노동자들의 조직 활동에 대항해 논란을 일으켰고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그리고 최근에 코로나19 백신 미접종자의 입장을 거부한 식당과 카페 명단이 블랙리스트로 온라인에서 퍼지며 논란이 일고 있다.
 

즉 혼밥을 하거나 PCR 검사, 음성 확인서 등을 제출하면 백신 미접종자도 식당을 이용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부 가게는 미접종자 입장 자체를 거부하자 이런 상호를 명단으로 만들어 SNS에 유포했는데 어째든 이러한 논란의 불씨는 정부의 일관성 없고 안전과 보상에 대한 보장 없이 무조건 백신 접종률을 높이려고 혈안이 된 방역당국의 잘못된 결정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국민들의 이간질 같은 행위는 그만두고 당장 백신패스를 철회하고 국민들께 사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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