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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위원 |
창에 비치는 햇살이 연인의 품처럼 포근한 어느 날 정원에 섰다. 아름답다는 말조차 진부할 만큼 내밀한 뜰에서 목련은 원죄 없는 부활로 깨어나 꽃을 피웠다. 돌돌돌 굴러 흐르는 작은 개울 소풍 나온 새들의 지저귐과 아우러지는 한 편의 드라마 속 장면이었다. 메마른 가지에 꽃눈이 통통하게 부풀어 올랐던 그 목련이 내내 침묵으로 일관하던 나무였지만 새봄을 맞으려는 산통 끝에 꽃망울을 터뜨렸다.
지난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그러나 목련화는 역경을 이겨내고 봄바람 타고 새싹이 어느 날 환하게 피어났다. 도시의 아파트 숲 사이에도 백목련은 환한 얼굴 내밀고 화사한 봄소식을 전해준다. 사람들은 밝은 얼굴로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시상에 빠지기도 한다. 사람의 삶 역시 고난의 연속이지만 결코 꿈을 잃지 않는다면 목련화처럼 환희의 날이 올 것임이 자명하다.
이른 아침 희부연 안갯속에서 소리 없는 몸짓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는 모습은 마주하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 모습은 마치 매서운 바람을 등지고 암컷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하얀 배속에 알을 품은 채 일제히 무리 지어 서 있는 남극의 펭귄을 보는 것처럼 숭고하기까지 했다.
순결 우아함 강인함 환희를 안겨주는 목련화 눈부신 목련의 아름다운 자태가 도저히 지상의 꽃으로 믿어지지 않는다. 다만 목련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목련의 낙화는 처참하기까지 한다. 도대체 누가 저렇게 높이 떠 있는 저 짧은 한순간의 광휘를 허용했단 말인가.
봄꽃 중의 목련화는 여왕격이다. 우아하고 순결한 모습과 강인함에서 만들어진 창조주의 솜씨일 것이다. 아름다운 목련화를 주신 창조주께 감사드린다. 우리의 삶도 이렇게 우아하고 순결하고 강인해서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삶을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목련을 보고 있노라니 귀에 익은 노래가 흥에 겨워 절로 나온다.
오, 내 사랑 목련화야/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희고 순결한 그대 모습/봄에 온 가인과 같고/ 추운 겨울 헤치고 온/봄 길잡이 목련화는/새 시대의 선구자요/배달의 일이로다. 목련을 두고 봄에 온 가인과 같고 추운 겨울 헤치고 온 봄 길잡이요 선구자라고 했다. 이는 봄꽃에 붙이는 최대의 찬사가 아닌가 싶다.
조선의 한 스님은 "꽃다운 애정과 향기로운 생각이 얼마인지 아는가? 산사의 뜰에 핀 목련은 내가 세속을 버린 것을 한없이 후회하게 만드나니"라며 목련 꽃을 청정함의 대명사로 칭했다. 목련 꽃을 보고 있노라니 굳이 목련화 노래 가사가 아니더라도 그대처럼 순결하고, 그대처럼 강인하게 그대처럼 우아하게 그대처럼 오늘도 내일도 아름답게 그리고 값지게 살아가고픈 충동이 일어나지 않는가. 어떤 이는 "목련이 피는 것은 마냥 좋으나 너무 서둘러 지는 것이 서러워서 가슴이 아리는 꽃"이라고 한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기 때문이다.
목련은 꽃차의 향기까지 깊게 해 사색에 빠지게 한다. 목련 꽃잎 두어 장 주워 흐르는 물에 살짝 씻어낸 다음 찻잔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목련꽃 차를 마셔보자. 지는 순간까지 끝내 아름다운 목련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뜨거운 물에 닿자 마치 붉은 피를 흘리며 순교했을 것 같은 하얀 목련이다. 절명의 순간에 향기로 부활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활의 내음을 맡고 싶으면 아름다운 향기로 생각을 거듭나게 하는 목련 꽃 차를 마셔볼 일이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배를 타노라` 시인 `박목월`이 지은 노랫말의 시작 부분이다. 이 시는 6ㆍ25전쟁이 끝나갈 무렵에 작곡가 `김순애`가 학생들의 정서를 순화하기 위해 곡을 붙인 것이 애창곡이라 전해진다. 목월이 아름답게 표현한 맑고 우아한 이미지의 목련이다. 봄의 전령이라는 목련은 우리들에게 목련처럼 우아하면서 희망찬 삶을 살아가라고 꿈을 선물하는 것이다. 목련에 얽힌 전설 하나를 들어보자.
아득한 옛날 하늘나라에 아름다운 공주 `플로다`가 살고 있었는데 신 `윈리스`를 사랑했다고 한다. 어느 날 플로다 공주는 몰래 궁궐을 빠져 나와 북쪽 바다로 달려가서 윈리스를 만났다. 그곳에서 공주는 그에게 아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실망한 나머지 바닷속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바다의 신 `윈리스`는 매우 슬퍼해 자기의 아내에게 독약을 먹여 죽인 후 `플로다`와 나란히 묻어주었다. 그 이후 흰빛의 백목련이 됐고 `윈리스`의 아내는 붉은 자목련으로 피어났다고 전해진다.
갓난아이 숨결 같은 봄볕 등에 지고, 자태를 뽐내듯 피어난 목련을 바라보며 희망과 부활의 삶을 노래하고픈 마음이 생긴다. 이런 심상으로 백목련을 감상하며 `봄의 화신 목련화`란 애환의 시 한 수를 써본다.
꽃눈이 붓을 닮아/목필이 된/그대 님 그리운 아침/동면 깨어나/봄바람 어깨동무하고/행여 오시려나 옷깃을 여민다/꼭다문 입술/방긋 연 미소/젖은 가슴/봄의 화신 목련화/매서운 바람 이는/불거진 정지문/떠나지 못하는 여인의 넋/잡초 무성한/버려진 난밭에서/상치 따는/처녀 가슴 어루만져 줄/희망처럼 부푼 목련이/전해줄까/기다려지는 이 아침 `박목월`의 시`4월의 노래`에서처럼 독자 여러분들도 저 풍성한 목련 꽃그늘 아래서 라는 베르테르처럼 첫사랑의 연인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떠올려 보았으면 한다.
http://www.changwonilbo.com/news/30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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