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가족이 무너지고 있다.
미국의 인류학자 조지 피터 머독이 저서 `사회 구조(Social Structureㆍ1949)`에서 `핵가족(Nuclear Family)`이라는 용어를 썼을 때만 하더라도 그는 핵가족이 붕괴하는 현상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부모와 미혼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은 `더 쪼갤 수 없는, 가족의 최소 단위`로 여겨졌기 때문.
그러나 이제 핵가족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1~2인 가구가 이미 전체 가구의 절반에 이르렀고 이런 추세는 앞으로 가속화할 전망이다.
학계 일각에서는 전통적 대가족과 핵가족에 이어 1인 가구가 `제3의 가족` 형태로 등장했다면서 가족 구조의 `혁명`이라고 일컫고 있다. 이 혁명은 인구 고령화, 사별에 따른 독거노인의 증가에만 기인하는 게 아니라 비혼(非婚)의 증대, 출산ㆍ양육 기피, 이혼의 증가 등이 복합된 결과다.
1~2인 가구의 증가 원인과 문제점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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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쪼갤 수 없는, 가족의 최소 단위`인 핵가족이 붕괴되고 `제3의 가족` 형태인 1인 가구가 늘어나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자료사진 |
핵가족이 무너지고 있다
1인 가구 증가의 핵심은 미혼 확산
회사원 김지연(32ㆍ여ㆍ가명)씨는 이른바 `골드미스`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신념도 없지만, 꼭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다.
"현재의 내 생활이 편하고 앞으로도 혼자 잘 꾸려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결혼한 선배들을 보면 애 키우기도 너무 어렵고,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도 어렵고…. 아이한테 투자할 돈과 시간, 에너지를 나를 위해 쓰면 그것도 나름대로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물론 좋은 남자를 만나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수도 있겠죠"
김씨처럼 결혼 적령기를 맞이하고도 결혼하지 않는 미혼인구는 1인 가구 증가에 `1등 공신`이다.
통계청의 `2010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의 가구 수는 총 1,733만 9,000가구로 이 가운데 1~2인 가구가 48.2%에 이른다. 2인 가구가 420만 5,000가구(24.3%), 1인 가구가 414만 2,000가구(23.9%)였다.
전통적 표준가구에 해당하는 4인 가구(부부 + 미혼자녀 둘)는 22.5%(389만 8,000가구)로 그다음이었다. 2005년 조사까지만 해도 4인 가구가 27.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1~2인 가구에 밀린 것.
20년 전인 1990년 `4인 가구(29.5%)-3인 가구(19.1%)-5인 가구(18.8%)`가 주류였던 점에 비춰보면 급격한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1990년 1인 가구와 2인 가구의 비중은 각각 9.0%, 13.8%에 불과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영철 부연구위원 등이 작성한 `가구 유형 변화에 대한 대응방안`에 따르면 최근 10년 사이 1인 가구 증가에 가장 크게 기여한 요인은 미혼율 증대다.
미혼 1인 가구 증가는 남성에서 더 두드러졌는데 남성 1인 가구 증가의 54.5%가 미혼 탓이었고 이혼 탓인 경우는 19.0%였다. 여성은 미혼이 37.6%, 사별이 36.0%, 이혼이 16.2%를 차지했다.
2인 가구의 증가 원인으로는 `자녀 분가`에 따른 고령부부의 증가와 이혼ㆍ분가 확산에 따른 편부모 가구의 증가가 꼽혔다. 10년 사이 증가한 2인 가구 중 부부만으로 이뤄진 2인 가구가 61.5%를 차지했고 모자가구가 18.7%, 부자가구가 7.0%를 차지한 것이다.
20여년 뒤 10가구 중 일곱, 1~2인 가구
통계청의 `장래가구추계: 2010∼2035년`은 더 어두운 미래를 제시한다.
2035년 국내 총 가구는 2,226만 1,000가구로 30%가량 늘지만, 평균 가구 구성원 수는 2010년 2.71명에서 2035년 2.17명으로 줄어든다.
1인 가구가 34.3%(762만 8,000가구)로 늘어 가장 보편적인 가구 형태로 자리 잡고 2인 가구(34.0%ㆍ757만 9,000가구)가 그 뒤를 잇는다. 3인 이상 가구 비중은 31.7%에 그친다.
10가구 중 7가구꼴로 전통적인 `표준가족` 범주에 들지 않는 1~2인 가구인 셈.
통계청 관계자는 "부부 가구는 자녀를 갖지 않은 가구보다는 주로 자녀를 독립시킨 뒤 노부부만 남은 가구가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진국 이미 거쳐 간 길… 韓 `과속`
1인 가구 증가는 우리나라만의 상황이 아니다. 가깝게는 일본부터 유럽ㆍ북미 선진국들이 이미 겪은 현상이다. 그만큼 되돌리기 어렵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김연수 KDI 부연구위원은 "유럽에서도 만혼, 이혼 증대, 고령화, 독거노인의 증가 등으로 말미암아 1~2인 가구가 늘고 있다"며 "다만 유럽은 이런 변화가 점진적이었던 데 비해 우리는 급속하게, 압축적으로 겪고 있다는 점이 차이"라고 말했다.
`혼자 사는 삶` 선택의 이유는
경제적 장벽ㆍ사회 인식의 변화
1~2인 가구의 증가는 쉽게 말하자면 `혼자 사는 삶`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뜻이다.
그들이 혼자 사는 삶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얼까?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갈래의 사유를 제시한다.
하나는 경제적인 장벽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ㆍ문화적 인식의 변화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핵가족이란 가족 중 한 사람이 벌어 나머지 2∼3명의 부양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을 때 존속 가능한 제도"라며 "저성장하는 사회, 성장을 하더라도 고용이 이뤄지지 않는 사회에서는 핵가족이 지탱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경제적인 장벽은 특히 미혼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결혼을 꺼리게 하는 `혼인 장벽`은 비단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비약적으로 늘었음에도 가정 내 여성의 성역할은 여전히 열악하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집안일까지 도맡아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에 `돈도 벌어야 하는` 짐이 더 얹어진 셈이다.
반면, 기업의 문화나 환경은 여전히 가족친화적이지 않다.
결혼이 개인 간 결합이 아니라 가족 간 결합을 의미하는 가족주의적 문화 전통이 부담스럽다는 여성들도 많다.
미혼율의 제고와 함께 고령화는 1인 가구 증가의 또 다른 축이다. 통계청의 `장래가구추계`에 따르면 2010년 1인 가구 가운데는 미혼가구가 186만 7,000가구로 44.9%를 차지해 가장 많지만 2035년에는 사별이 35.4%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물론 미혼(33.8%), 이혼(17.0%)의 비율도 상당할 것으로 전망됐다.
여기에 한국만의 독특한 가족 문화도 1인 가구 증가에 한몫하는 측면이 있다.
여성의 경제력 향상, 노부모 부양이 의무시됐던 사회적 규범의 붕괴, 이혼에 낙인을 찍던 인식의 퇴조, 간섭이나 속박 대신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개인주의 가치의 확산 등도 두말할 나위 없이 핵가족 해체를 부채질하고 있다.
따뜻한 보금자리의 실종
핵가족의 파편화, 가정의 붕괴 의미
더는 쪼개질 수 없는, 가족 형태의 `최소단위`로 여겨졌던 핵가족의 파편화는 곧 가정의 붕괴를 의미한다. 가정의 붕괴는 무엇보다 구성원 상호 간의 돌봄과 보살핌이 사라짐을 뜻한다.
영유아나 노인, 아픈 사람 등 돌봄이 필요한 사람에게 보살핌을 제공하는 1차적 공동체가 가정이었는데 핵가족마저 해체되면 이제 가정에서 이런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되는 것.
가정은 또 정서적 치유 및 휴식의 장(場)이자 고된 사회생활로 지친 심신을 재충전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핵가족의 해체는 이와 같은 가족의 기능, 역할이 점차 퇴색할 것임을 시사한다.
유정미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는 "사람이 살아가려면 일도 해야 하지만 그것보다 더 근본적으로 먹고, 입고, 자고, 아플 때 치료ㆍ간병하고, 늙고, 아이를 낳는, 이른바 `재생산의 기능`이 작동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근대적 핵가족은 성별에 따른 분업체제 아래 여성이 가정에서 이를 도맡아 수행해온 모델이었다는 게 유 교수의 설명이다. 남성은 이와 같은 여성의 재생산 노동에 힘입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노동에 전력투구할 수 있었다는 것.
최근 여성계를 중심으로 `돌봄 노동의 사회화`가 가족 붕괴의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다. 가정에서 여성이 사적인 형태로 수행해온 `돌봄 노동`을 이제 가정이 아닌 국가와 사회가 부담하는 방식으로 재편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경제적 활력이 크게 훼손된다는 점도 핵가족의 붕괴에 따른 저출산이 초래할 또 다른 문제점의 하나로 지적된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인구구조 변화와 금융안정 간 관계` 보고서에 따르면 생산가능인구가 줄면 노동력 공급이 감소하고 생산성도 낮아져 결국 경제성장률과 1인당 소득 증가율이 저하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수요 감소가 급격한 자산가격 하락을 불러오지 않도록 연착륙을 유도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ㆍ인식
가족 형태 변화에 따라가지 못해
결혼으로 묶인 부부와 그 자녀로 구성된 혈연 중심의 전통적 가족 형태가 미혼 또는 비혼 1인 가구, 동거 가구, 공동체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음에도 사회적 인식과 제도는 아직 이러한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성간 법률혼을 매개로 하는 소위 `정상가족`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사회적, 문화적 편견과 제도적 차별을 일상에서 경험한다.
주택, 사회보험, 세제 등 정책이 그러한 범주에 속한다. 현행 청약가점제는 부양가족 수 등을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설정해 1인 가구는 후순위로 밀리거나 아예 신청자격을 갖지 못한다. 35세 미만의 단독세대주는 국민주택기금 전세자금 대출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동거 가구처럼 혈연관계가 없음에도 생계와 생활을 함께하는 `비혈연 공동체` 역시 비슷한 제도적 소외를 겪는다. 국민임대주택에서 세대주가 혈연관계 아닌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제한하는 게 한 예다. 입주자격이 있는 세대원은 세대주의 직계존비속에 한정된다.
정상가족 범주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제도뿐 아니라 사회ㆍ문화적 측면에서도 벽에 맞닥뜨린다.
미혼ㆍ비혼자는 주변으로부터 끊임없이 "결혼하라"는 직ㆍ간접적 압박에 시달리고 `미성숙한 사람`이라는 편견에 부닥친다. 동거, 동성애 커플, 미ㆍ비혼모 가정 등은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비정상`으로 치부된다.
이러한 상황은 문화적 차별이나 제도적 형평성 문제를 넘어 사회구조의 안정적 관리라는 측면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KDI는 동거 가정이 보편적으로 자리를 잡아 출산과 양육의 큰 부분을 담당하고 미ㆍ비혼모도 일반화한 주요 유럽 국가의 사례를 들면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선진국들이 심각한 초저출산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이성간 공동생활을 결혼시기까지 늦추고 동거상태의 출산을 사회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와 연관돼 있다"고 지적했다.
결혼 제도 안에서의 출산만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한국, 일본에서 출산율이 더 크게 곤두박질 쳤다는 것이다.
/손온누리 기자 ㆍ 일부 연합뉴스
http://www.changwonilbo.com/news/596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