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역에서 중국으로 들어오는 실크로드의 종착지이자 10개 이상 왕조의 수도였던 `장안`을 시안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때는 명대다. 이곳을 통한 서역 문물 유입은 한대에 시작해 위진남북조 시대의 지속적인 확대를 거쳐 수ㆍ당대에 전성기를 맞이했고 동서의 문명은 이 지역을 통과하면서 중국 문화의 촉진을 가했다.
요즈음 시안시내에 들어서면 팔방으로 길이 나있는 로터리에 고루가 있다. 한국에서 늘 한 개의 종이 달려 있던 종루를 보아 오다가 장안의 고루를 보면 루라기 보다 궁궐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거대한 고루에서 울려 퍼지는 북소리보다 더 요란했던 장안의 화제가 있었으니 당 현종과 양귀비의 러브스토리다.
음악애호가였던 현종(재위 기간 713~756)은 그의 아내 무혜비가 죽고 나서도 금을 타며 외로움을 달래곤 했다. 바로 그 가락에 맞춰 양귀비(옥환)가 춤을 추면서 두 사람의 첫 만남이 이뤄졌고, 양귀비는 항시 현종을 위한 음악과 춤을 췄으니 현종이 좋아한 것이 양귀비라는 여인이었는지 그녀의 예술이었는지 헷갈릴 정도다.
현종이 양옥환을 처음 만났을 당시는 그의 아들 수왕 이모와 결혼한 지 6년이 된 며느리였음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터. 세간의 눈치를 피하기 위해 옥환을 도교의 수행처로 보내서 며느리의 신분을 세탁했다. 아무튼 백성들의 눈치를 무시할 수 없는 황제인지라 도덕과 인륜의 명분을 세우기 위해 옥환이를 도교 수행처에 보내서 수년간을 기다리면서까지 연인으로 맞이했다.
현종이 옥환을 귀비로 책봉한 해는 서기 745년, 한국은 그 즈음 신라 경덕왕 시절이었다. 당시 현종의 나이 61세. 이미 육십을 넘긴 나이에 그토록 옥환을 연모한 것은 그녀의 자색도 자색이지만 음악과 춤이 결정적인 것이었다. 현종은 나날이 그녀의 예술과 향락에 빠져서 정사를 그르쳤다. 양귀비는 춤뿐만이 아니라 악기를 타는데도 능해 실로 그녀의 춤과 음악은 현종을 붙들어 매는 마약과도 같았다.
문(文)과 예(藝)를 더 없이 사랑했던 현종. 양귀비의 목욕탕 화청지와 시안 곳곳을 돌아들면 현종의 인문학적ㆍ예술적 경지에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역대의 중국 명필 65만 252자에 이르는 비림의 많고 많은 비문 중에 단연 중심적 위치에 있는 것은 현종 친필이 새겨진 어주효경비였다.
왜 양귀비는 현종의 사랑에 대한 답례를 그렇게 했을까. 귀비가 된 옥환은 자신의 치마폭에 황제를 가두고선 친정 오라비며 그녀의 주변 사람들에게 황실의 온갖 특혜를 나눠 주기를 10년. 그 이듬해(756년, 경덕왕 15년, 현종의 나이 71세, 양귀비 38세)에 안록산이 사사명과 함께 난을 일으켰다.
양귀비의 양아들이기도 했던 안록산은 그녀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인물. 안사의 난에서 양귀비는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피신해 있던 현종은 훗날 태상왕이 돼 되돌아오니, 양귀비만 스스로 제 눈을 찌른 것이 되고 말았다.
난을 피해 있던 현종은 그의 아들이자 황태자인 이형이 재위하면서 태상황으로 되돌아오지만 이미 양귀비는 세상을 떠난 뒤. 백거이는 이를 두고 한편의 시를 지었다.
"천하정세 변해 황제 돌아오는 길에, 마외역에 이르러선 발길 뗄 수 없었네. 양귀비 쓰러져 죽은 흙더미 속에는, 고운 얼굴 어디 가고 죽은 자리만 남아"
훗날 현종은 양귀비의 시신을 찾아 좋은 곳으로 이장하려 했지만 끝내 유골조차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항간에서는 양귀비가 하도 예뻐서 그녀의 목을 치기로 한 군사가 차마 죽일 수가 없어서 일본으로 빼 돌려 일본에 양귀비의 무덤이 있다는 등 분분한 설들이 많다.
아무튼 요즘 시안에는 양귀비가 좋아했다는 만두집이며 갖가지 기념품점이 관광객들을 붙들어 맨다. 그 중에서 양귀비의 춤과 음악을 직접 감상할 수 있는 공연이 있으니 일명 `양귀비쇼`. 여느 공연과 마찬가지로 저녁 무렵에 무대가 올라가면 화려한 조명과 함께 양귀비의 노래와 춤이 펼쳐진다. 무희와 악사들의 화려한 의상이며 무대 장치가 꽤나 고전을 재현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이지만 사실 무희의 현란한 동작이며 개량된 전통 악기로 연주되는 반주 음악은 당대의 음악과는 거리가 멀다.
비유하자면 외국인을 위한 워커힐쇼와 같이 부채춤이며 장구춤과 같은 관광 서비스용 양귀비 쇼. 그러니 이를 두고 당대의 음악이 어쩌고저쩌고 태클을 걸 처지는 아닌 것 같다. 아무튼 이 무대에서 시안의 고악 비슷한 것도 감상할 수 있고 절세미인 양귀비스런 춤과 노래도 들을 수 있으니 관광 상품으로서는 그럭저럭 괜찮은 편. 관람객들 중 유난히 남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을 보면 아마도 자신이 현종이라는 환시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윤소희 (작곡가ㆍ음악인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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