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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1/02/23  창원일보
[이상호 칼럼]
미얀마 군부 쿠데타

`전략과 전술` 저자
미얀마는 고대 원주민이 중국 원나성에서 이주해 이라와디 강 유역 중북부에 정착해 살던 퓨족과 중앙아시아로부터 캄보디아, 태국을 거쳐 내려와 이라와디(에야와디) 강변의 하류지역에 정착해 살던 몬족으로 몬족은 인도의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왕과 무역 왕래를 하면서 농업기술과 불교 힌두교를 전수받아 미얀마 최초로 벼농사를 짓고 상좌부 불교(소승불교, 즉 스스로 수행을 통해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를 최초로 동남아 각지로 전파한 민족이며 퓨족은 불교문화의 영향으로 다양한 불상과 탑을 세우고 뛰어난 금속공예로 각종 동물형태의 장식물은 물론 금과 은으로 동전을 만들어 사용해 높은 문화 수준을 유지하며 이라와디 유역에서 각각 두 민족은 생활하는데 9세기 초 중국의 남서쪽 운남성 지역에 소수민족인 이족과 백족이 세운 남조왕국이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북으로는 사천(촉ㆍ쓰촨성)의 성도와 운남(원난성)을 점령하고 동으로는 베트남을 점령, 남으로는 태국과 미얀마를 공격한다. 그러자 퓨족과 몬족은 큰 타격을 입고 세력이 기울자 티베트 동쪽 산악지역에서 남하한 버마족의 아나우라타 왕이 표족과 몬족을 통합하고 버마 최초의 왕조 바간제국을 세운다.
 

그리고 아나우라타는 몬족 승려신 아라한을 영입해 불교를 장려하고 1만개에 달하는 불교사원을 짓는데 여기에 돈을 너무 쏟아 부어 국가재정이 바닥나 나라를 기울게 만든다.
 

한편 중국과 유라시아 대륙엔 몽골족이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장악하고 제국을 건설해 국호를 원으로 하고 발길을 동남아시아로 향한다.
 

몽골족의 4대 왕인 쿠빌라이가 버마족의 바간왕조에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받치라고 요구하자 겁 없는 깐수4세 왕은 조공을 거부하고 오히려 조공을 요구한 사신을 죽여 버린다.
 

그러자 화가 난 몽골족은 1277년 미얀마의 바간제국을 공격해 북부를 점령하고 버마족들은 도망치면서 중부는 잉와왕국, 남부는 한타와디(몬족왕국)왕국 서부에는 아라칸 왕국을 세워 뿔뿔이 흩어지고 그러다 세월이 지나 어느 정도 세력을 갖춘 버마족은 타비 슈웨티가 두 번째 왕조인 퉁구왕조(따웅우 왕조)를 세우고 명장 바이난웅이 서쪽으로는 인도의 마니푸르에서부터 동쪽으로는 태국과 라오스까지 정복해 미얀마 최대의 영토를 확장을 하면서 안정을 찾지만 1581년 바이난웅이 사망하자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퉁구제국은 다시 여러 나라들로 분열된다.
 

분열된 버마는 바인나웅의 후손이자 잉와의 왕 이였던 아나욱폐륜이 다시 통일을 시키지만 쇄국정책으로 인해 나라가 기울자 1752년 몬족왕국의 침입으로 퉁구는 멸망한다. 이후 버마족의 알리웅파야 왕이 버마족의 마지막 왕조 콘바웅을 세우고 몬족왕국을 공격해 멸망시키고 알리웅파 뒤이어 보도파야 왕이 1784년 미얀마 서부지역에 정착하던 아라칸왕국을 공격한다.
 

그러자 아라칸인은 이웃 영국의 식민지 국가인 인도로 도망치자 이를 쫓던 보도파야왕은 영국군과 충돌하고 결국 전쟁을 벌여 패하고 영국식민지로 전략한다. 이후 미얀마는 1920년에 자유와 독립의 바람이 불면서 영국정부에 미얀마 자치권을 요구하는데 영국은 거절하고 이후 1939년 2차 대전이 발발하고 영국은 전쟁으로 인해 국력이 쇠약해진다.
 

그러자 이를 틈탄 일본이 영국의 소유물인 동남아의 천연자원, 쌀 등을 얻기 위해 버마를 침입하고 각종 만행을 일삼자 아웅산 장군은 일본군에 반란을 일으키고 영국군과 동맹을 맺어 일본군을 몰아내고 마침내 1947년 1월 27일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한다. 하지만 독립을 한 버마는 개국초기부터 민족갈등과 권력투쟁, 부정부패 등으로 내전상태에 빠지고 아웅산은 군부 반대파에 암살당하는 등 대혼란에 빠진다. 그러자 1962년 네원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소수민족(로힝야족)을 탄압하고 부패한 독재정치로 경제가 기울자 1988년 8월 8일 대규모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 네윈은 물러나고 뒤이어 신군부인 소마웅(육군 참모총장, 국방장관)이 다시 집권을 하면서 국호를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꾸고 영국식으로 불리던 지명(랑군→양곤)을 미얀마 전통에 따라 변경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집권직후 1990년 5월 자유선거를 치루겠다는 약속대로 1990년 총선을 실시한다.
 

그러자 아웅산의 딸인 수지의 민주주의 민족동맹(NLD)이 80%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자 소마웅 군부(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는 아웅산 수지를 가택 연금(감금)시키고 NLD정치인을 체포, 구금하며 선거무효를 선언하고 새로운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정권을 유지한다고 공표하고 그는 1997년 심장미비로 69세에 사망한다. 뒤이어 탕슈웨가 정권을 이어받고 군부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 맘대로 헌법을 바꾸는 등 갖가지 비리를 일삼자 또 다시 전국적인 민주화운동(샤프론 혁명)이 일어나 총선(2010년)을 실시하는데 군부정권이 의석을 휩쓸고 테인세인이 대통령에 오르고 탕슈웨는 물러난다.
 

이후 2015년 11월 다시 총선이 실시되고 아웅산 수지의 민주주의 민주동맹(NLD)이 491석 중 390석을 차지해 압도적 승리를 거두고 63년 만에 수지 국가고문이 집권을 하고 2020년 다시 총선이 치러지는데 수지의 NLD가 전체 선출의석 476석 가운데 396석(83,2%)으로 압승을 거두자 군부는 총선 부정 의혹을 제기하고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는데 이는 겉 무늬만 민주주의 구색을 갖추는 것이지 1당 독재를 하는 공산주의 국가와 다를 봐 없다.
 

그래서 이번 미얀마 군부의 반란은 어떠한 명분을 내세워도 타당성과 논리에 있어서 설득력(說得力)이 없다. 설상 수지의 민주주의 민족동맹이 부정선거를 저질렀다고 해도 그것을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내에서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대화로 풀어가야지 총칼을 앞세워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패거리 깡패집단과 뭐가 다른가. 군부는 각성하고 물러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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