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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가ㆍ칼럼니스트ㆍ치유문화예술전문가ㆍ백이산교육농장 대표(함안군) |
외모가 내면을 대신하는 현실 속
세상일은 영원할 수 없는 운명
목적 사라지면 공간 흔적도 사라져
내적으로 충족되지 않는 시달림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 해결 안 돼
해가 저물면 작은 골방으로 들어와 `그라모폰 컴퍼니`에서 생산된 100년 된 낡은 축음기 턴테이블에 태엽을 감고 바늘을 올린다. 바늘은 SP판의 홈 사이를 파고들며 심장을 향해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내 안의 작은 울림은 내 밖의 소리를 삼키고 옛 기억을 따라 공명해 `맥놀이`가 인다.
눈을 감는다. 선율은 의식 속의 이미지를 따라 나를 이끈다.
기억에는 많은 그리움이 터를 잡고 있다. 낡은 판과 바늘이 부딪치며 철 지난 옛 노래가 방안을 채운다. 오래간만에 먹구름 사이로 하늘이 웃는 소리를 듣는다. 세상의 수많은 소리 중 내 안에서 일어나는 소리, 초등학교 4학년 때 여선생님에게 설렌 가슴 들킨 것 같아 얼굴을 붉히며 돌아와 강아지를 발길로 차며 서성거렸던 그 어린 시절에 와있다.
음반이 돌면서 뻐꾸기시계에 무희들이 나와 몸을 움직이며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춘다. 자유를 위해 현실과 이상 사이를 오가는 즐거움과 그리움 사이에 왜 사는지를 고뇌하는 자아에 가면을 씌운다.
가면 속에 피어나는 원초적 욕망은 현실이 되지 못해도 자유로움이란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삶의 공허란 근원적으로 슬픈 왈츠 때문이 아니라 태엽을 지속해서 감아주지 못한 단절로 화려한 춤을 추던 무희들이 사라진 무대와 관객이 떠나버린 의자 사이에 펄럭이며 뒹구는 구겨진 흔적들이다.
산다는 것은 음반처럼 돌고 돌아다니며 미친 듯 춤을 추다가 해가 저물면 흙 묻은 영혼으로 삶의 미동을 삼키며 밤을 맞이하는 일이다.
실체로부터 나온 이미지가 왜 실체를 죽이는지 컬러에서 흑백으로 성인에서 어린아이로 길을 따라나선다.
아이들이 골목에서 총알 껍질을 갖고 논다. 추위에 떨며 우는 아이를 업고 칭얼대는 아이가 있다. 부모를 잃은 아이가 친척 집에서 눈치를 보며 자란다. 잔칫집에 걸인들이 떼를 지어 서성인다. 학교에서 미원조 옥수수 가루와 분유를 받기 위해 빈 도시락을 들고 줄을 서있다.
갑자기 의식의 흐름을 깨는 전화벨이 울린다.
"아빠 올 때 깨끗한 옷 좀 입고 오세요." 인공 임신에 성공한 시집간 딸의 전화다.
외모가 내면을 대신하는 현실. "그래그래 너 말이 맞다. 좋은 이미지가 권력을 만드는 세상이지"일하다 산도적이 다 된 얼굴로 거울을 바라본다. 시커먼 얼굴이 피씩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부모의 외모가 딸의 자존심이 되기도 하는세상. 수돗가에 쓰다 남은 빨래비누 조각을 문질러 얼굴을 씻는다. 십수 년 전 직장 다닐 적 입던 양복을 꺼내입는다. 거울을 본다. 찌든 농부의 얼굴은 차려입어도 거기서 거기다. 나는 없고 서열과 체면, 명분과 보이는 이미지가 전부인 삶-.
기억을 따라가던 나는 축음기의 태엽을 다시 감고 현실의 소리를 끌어와 그리움을? 증폭시킨다. 미셸 푸코가 말한 들뢰즈의 시대가 현실이 된 오늘 이미지가 실체를 죽이고 노예가 주인이 되는 변증법의 시대…. 그러나 어느 하나 세상일은 영원할 수 없는 운명이기에 한정된 시간이 지나면 턴테이블은 왈츠가 끝나도 공회전한다.
공회전이란 춤과 음악이 사라진 황량한 공간에 미희들이 사라지고 기계적 목적만 남아있는 공허감이다. 목적이 사라지면 공간의 흔적마저 사라진다. 공이란 없음을 말하지 않고 없음을 숨긴다. 금력과 권력은 또다시 턴테이블에 바늘을 옮겨놓고 미희를 불러 춤추게 할 수 있지만 삶의 의미를 잃은 공허는 슬픔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무엇이든 내적으로 충족되지 않는 시달림은 이미지만으로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가끔 의미를 잃은 공허는 가상의 이미지로 탈출한다. 이때 우리는 "넋이 나갔다"고 말한다. 넋이 나간 턴테이블은 목적 없이 돌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멈춘다. 인생이다.
http://www.changwonilbo.com/news/303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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